지난 10월27일 오전 11시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서관 18층. 포스코청암재단의 3기 청암과학펠로 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인 박태준 명예회장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암(靑岩)은 박 명예회장의 호이다.
박 회장은 이날 격려사를 읽었다. 자신이 직접 쓴 원고지 5장 분량이었다. 이미 폐가 나빠진 터라, 읽는 모습은 매우 힘들어 보였고 간간히 기침도 했다.
그는 "여러분, 인생은 짧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추구하는 어떤 꿈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짧은 것은 아닌 듯합니다"라는 격려사 마무리 부분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철인으로 불리는 그였지만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견한 듯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날 행사는 결국 그의 생애 마지막 공식행사이자 외출이 됐다. 재단 관계자는 "명예회장께서 눈물을 흘리는 걸 본 사람은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한없이 강하기만 했던 그 분의 약해진 모습을 보면서 장내는 너무도 숙연해졌다"고 말했다.
고 박 명예회장은 2000년5월 국무총리를 끝으로 40년에 가까운 기업인과 정치인의 삶을 마감하고 포스코장학회와 청암재단을 통해 장학ㆍ교육사업에만 전념했다. 그는 "내 생전 마지막 소원은 한국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을 만큼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 육성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그는 재산도 없다. 포스코측의 권유를 뿌리치고, 명예회장직을 무보수를 고집했다. 서울 아현동 자택을 처분해 사회에 환원한 뒤 큰 딸 집에 거주하면서, 생활비도 자녀들로부터 받아썼다는 후문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이 사익을 채워서는 안된다는 게 신조였다"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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