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연구실 문을 열면 마른 오징어 냄새가 난다. '빨강오징어' 10마리 냄새다. 북태평양에서 꽁치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제자 이재성 시인이 낚시로 직접 잡아 배에서 말린 것이다. 연구실을 찾는 사람 중에는 퀴퀴한 마른 오징어 냄새가 싫은지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나는 그 냄새가 좋다.
바다에서 제자가 흘린 땀 냄새를 닮았기 때문이다. 빨강오징어는 크기가 만만찮다. 말렸는데도 전체 길이가 1m도 넘어 들면 묵직하다. 두께도 꽤 두툼해서 1.5cm에 가깝다. 제자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 오징어를 잡았을 때 색깔은 빨강색인데 시시각각 색깔이 변한다고 한다.
집어등을 밝힌 바다에 꽁치를 잘라서 미끼로 달아 줄 낚시를 던지면 이내 물려 올라온다고 한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데 푸른 북태평양을 배경으로 찍어온 낚시 사진을 보니 당장이라도 바다로 떠나고 싶다. 하지만 그 말을 제자 앞에서 하지 못했다.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가 1,000톤의 꽁치를 잡아 오는 길에 가족과 이웃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잡은 '빨강오징어'가 아닌가. 새끼가 올라오면 전구에 구워서 먹기도 했다는 추억담도 더해진다. 내 연구실에 오징어는 한동안 보관될 것이다. 추워지고 눈이 내리는 날 밤이면 살점 푸짐한 빨강오징어를 잘 구워 쭉쭉 찢어서 제자들과 함께 소주 한 잔 나누고 싶다. 북태평양을 질근질근 씹어가며.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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