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언뜻 무표정해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소녀는 눈썹에 힘을 준 채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두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소녀가 엄숙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곳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이다.
14일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사죄와 배상을 촉구해온 ‘수요시위’ 1,000회를 맞아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인 ‘평화비’가 일본대사관 건너편 인도에 설치됐다.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의 높이 130㎝ 크기 청동상 옆에는 빈 의자도 하나 놓여있다. 정부에 신고한 234명의 위안부 피해자 중 현재 63명만이 생존해있는 쓸쓸함이기도 하고, 이 길을 지나는 사람 누구라도 함께 하자는 연대의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1992년 1월 8일부터 이 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2011년 12월 14일 천 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우다.’
이날 오전 11시30분부터 열린 1,000회 시위에는 시민 2,000명(경찰 추산 1,000명)이 참여했다. 엄마 품에 안겨 따라 온 어린 아이부터 중ㆍ고교생,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일본 유럽 등 외국인들도 적지 않았다. 또 전세계 8개국 42개 도시에서도 연대 시위 및 전시회를 열어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에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많은 할머니들이 별세하고 생존해 있더라도 노환으로 시위에 참석하지 못해 주인공이 돼야 할 피해 할머니는 길원옥(83) 김복동(86) 박옥선(87) 김순옥(89) 강일출(83) 할머니 5명만 자리를 함께했다.
생존자 발언에 나선 김복동 할머니는 “세상에 태어나 한번 펴 보지도 못한 나이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 노예가 되어 허무하게 짓밟힌 피 맺힌 역사를 국민들이 얼마나 알까요”라며 “이명박 대통령은 백발의 늙은이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우성 치는 것을 모른 척 하지 말고 일본 정부에 엄중하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라”고 촉구했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때로는 함성을 외치고 때로는 눈물을 훔쳤다.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시위에 참여한 박명신(오산 운천고 3) 군은 “교과서에는 할머니들의 아픔이 피상적으로만 나와있어 직접 시위에 나왔다”며 “앞으로도 자주 와서 응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온 요네자와 키요에(71)씨는 “우리나라가 20년 동안 침묵해왔지만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 온 거 보니 앞으로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며 거듭 “미안하다”고 했다.
이날 2,000여명의 시민들이 2시간 동안 일본대사관을 향해 “사죄하라”고 외치고 함께 ‘아리랑’등을 부르며 일본의 대답을 요구했지만, 모든 창문에 블라인드를 친 일본대사관은 조용하기만 했다.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일본 관방장관은 오히려 이날 오전 “한국 정부에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20년간 수요시위를 주최해온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일본의 긴 침묵 외에도 걱정이 하나 더 있다. 국민들의 무관심이다. 윤미향 정대협 공동대표는 시위가 끝난 후 “다음 주에 1,001차를 하면 언론도 시민들도 모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매주 수요일 할머니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시위를 하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는 영상 메시지에서 지난 20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할머니 힘내세요’ 하면 가슴이 활짝 펴지는 것 같아. 꽃으로 치면 함박꽃이 된 것 같아.”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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