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옹진군 소청도 남서방 85Km 해상에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단속하다 인천해경 3005함 소속 이청호(41) 경장이 순직한 12일 상황은 긴박했다. 바다는 고요했지만 선상은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 이 경장과 함께 작전에 참여했던 해경 대원들은 중국 선원들의 극렬한 저항에 치를 떨었고, 열악한 작전환경 속에 이 경장이 희생됐다고 입을 모았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이 빚어진 것은 작전 개시 후 1시간 15분이 지난 12일 오전 6시55분. 이미 대원들은 삽과 죽창을 들고 저항하는 루원위호 선원 8명을 테이저건 등으로 진압하고 작전의 마지막 수순에 들어갈 때였다. 조타실에 있는 선장 청따웨이(42)만 잡으면 될 일이었다. 이낙훈(33) 순경이 쪽문을 부수고 조타실에 진입하는 순간, 청 선장이 작심하고 휘두른 칼에 복부를 찔렸다. 이 순경이 부상을 입자 뒤따라 들어간 백기현(32) 순경이 4단봉으로 선장의 어깨를 내리쳐 잡고 있던 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때만 해도 청 선장을 쉽게 제압할 듯했다.
하지만 통로가 문제였다. 조타실로 들어가는 앞문과 쪽문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통로가 좁아 한 사람씩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격렬히 저항하는 청 선장을 제압하기 위해 이청호 경장을 비롯한 해경대원 네 명이 줄 지어 조타실 앞문으로 진입하자 청 선장은 놓친 칼을 다시 들었다. 제일 앞에 선 이 경장과 격투를 벌이던 청 선장은 오전 6시 59분 들고 있던 칼로 이 경장의 왼쪽 옆구리를 찔렀다. 17cm 칼날 전체가 몸으로 들어갔다. 작전에 참여했던 강희수(29) 순경은 "이 급박한 상황은 5분 내외의 짧은 시간에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 경장이 쓰러지자 뒤에 있던 해경 대원 3명이 선장을 덮쳤다. 이낙훈 순경도 다친 몸을 이끌고 재차 진입을 시도, 조타실을 장악했다. 통신장비가 있어 다른 어선에 도움을 청할 수 있고 배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조타실 장악은 불법 어선 나포 작전의 핵심이다.
청 선장 제압 후 긴장이 풀어지자 이 순경은 그제야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피가 쏟아졌다. 옆구리를 찔린 이청호 경장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오전 9시 45분 헬기로 인천 신흥동 인하대병원에 도착한 이 경장은 안타깝게도 숨을 거둔 상태였다. 이 순경은 곧바로 수술실로 옮겨졌다.
13일 인하대병원 병실에서 만난 이 순경의 상태는 알려진 것보다 심각했다. 피를 많이 흘려 수혈을 받는 중이었고 말을 오래 할 수 없었다. 병실 앞에는 '면회 사절'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었다. 이날 문병 온 조현오 경찰청장,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도 짧게 안부만 묻고 자리를 떴다. 이 순경의 약혼녀 피모(27)씨는"당시 위험한 상황이었다고만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순경의 형 학돈(35)씨는 "어제 수술이 끝난 뒤 동생이 먼저 한 말이 '같이 온 그 분(고 이청호 경장)은 어떻게 됐느냐'였다"며 "운명을 달리했다고 하니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다"고 전했다.
인천=정승임기자 choni@hk.co.kr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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