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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아끼려다… 화마가 앗아간 '단칸방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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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아끼려다… 화마가 앗아간 '단칸방의 꿈'

입력
2011.12.1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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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가 없어 휴대용 미니 가스난로로 추위를 견디다 이 난로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발생, 집안에 있던 장애인 박모(18)군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아들 손자를 잃은 슬픔에 갈 곳마저 사라진 이 가족의 사연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2일 오후 6시 40분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무허가 판잣집에서 불이 나 박군이 질식사하고 함께 있던 박군의 할머니 원모(84)씨는 구조됐다. 난로가 넘어져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은 8분만에 세 평 남짓한 단칸방 내부를 모두 태웠다. 그리고 가족들의 소박한 꿈마저 앗아갔다.

선천성 희귀질환이 있었던 박군은 아버지(51)와 형(20), 그리고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 원씨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10여년 전 이혼해 집을 떠났고, 아버지 박씨가 차량으로 잡화를 팔며 가족들을 부양해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박군이 시력을 점점 잃고 간질 증세마저 보인 데다 원씨의 치매도 심해지면서 박씨는 장사를 접고 가족을 돌봐왔다. 가족 앞으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52만원) 노령연금(9만원) 장애연금(3만원)에다 형 박씨가 2년여 전부터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어오는 돈으로 네 식구가 근근이 버텼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판잣집이지만 난방은 꿈도 못 꿨다.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것이 낚시터 등에서 사용하는 휴대용 미니가스난로. 하지만 화재가 발생하던 순간 아버지 박씨는 친구와 오랜만에 낚시터에 갔고, 형 박씨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박군과 치매 할머니는 번지는 화마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박씨는 가족과 함께 장애인 우선 분양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시력 때문에 5급 장애인이었던 박군이 간질로 1급 판정을 받으면 임대아파트에 우선적으로 들어갈 자격도 생긴다. 그래서 지난달엔 재검 판정을 받으러 병원에 다녀오기도 했다. 다가오는 31일이 분양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집이 다 타버려 당장 몸 누일 곳조차 없어졌다.

이웃들은 유난히 사이가 좋던 박군 가족의 안타까운 소식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화재 2시간 전 박군의 집을 방문했다는 인근 교회 박모(41) 집사는 13일 "박군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항상 '빨리 장가 가서 할머니 호강시켜주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며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어도 손주만은 잘 알아보고 활짝 웃곤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웃들은 "아버지 박씨 역시 몸이 아픈 막내아들과 다정하게 장난을 치는 등 친하게 지냈고 박군도 유독 아버지를 잘 따랐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제 가족에겐 박군도, 세평 남짓 단칸방도 없다. 찾는 이가 없는 박군의 쓸쓸한 빈소를 지키는 친척들도 한숨만 쉬었다. "중환자실에 있는 할머니 병원비는 어떻게 내고, 당장 15일에 장례가 끝나면 가족들은 어디서 잘지…."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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