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에, 화려함에 취해 몰랐다. 그러나 육순으로 접어든 지금, 그는 자신의 예술을 생각한다. 그것은 원조 사물놀이 멤버들과 지내던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이기도 하다. '드럼의 전설' 혹은 '드럼의 대부'. 드러머 김희현(60ㆍ사진)의 별명이다. 이제 그 의미는 1년째 이끌고 있는 악단'김희현과 아우름'을 만나 새로 피어나고 있다.
"말하자면 퓨전 밴드예요."서양 대중음악 형식에 국악을 시청각적으로 도입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판소리에서 북잽이가 서양의 드럼 세트 앞에 앉았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거기서 그는 추임새는 물론 이야기 속 인물 역할도 하니 양식의 확장이라고도 할 법하다.
"다음 앨범은 신약성서 누가복음 중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판소리로 만든 곡으로 채울 겁니다." 자신과 여자 판소리꾼 황세희, 송길화가 번갈아 사설을 읊으니, 이를테면 창극의 실내악화다.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구만 / 더 자극적이고 재미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디."경우에 따라 탕자의 형 역할도 한다. "나는 허구한 날 고생했는데, 나한테는 염소 새끼 한 마리만 잡아 주더니." 동서양 음악 형식을 다 해보고, 마침내 우리 전통음악에 착목하기까지가 탕자의 역정과 같다고 한다.
전남 완도 출신인 그는 전남 해안 지방의 명창들을 꿰뚫고 있던 귀명창 부친 덕에 젖먹이 때부터 소리북을 쳤다. 1980년대 후반 가수 조용필이 판소리 창법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누리던 때, 그는 10년 동안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드러머였다. 당시 한국일보 주최 미주투어 때 교포들은 '한오백년'의 드럼에 울었다는 말도 있다.
그는 사물놀이 탄생 이전에 국방부 군악대에서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등 사물놀이 원조들을 만났다. 제대 후에도 설장고, 삼도농악, 판굿 등을 협연했는데 KBS 소속이라는 현실적 제약으로 그 꿈을 접는가 싶었다. 다시 돌아온 것은 10여년 전 하와이 공연에서 김소희제 뱃노래를 부르던 명창 안숙선을 즉흥 드럼 연주로 받쳐준 일이 발단이 됐다. "재즈에도, 록에도 반응이 없던 서양인들이 갑자기 뒤집어지더라구요."
그의 견고한 자의식은 곧 자부심이다. "황인종이 왜 미국 음악을 베끼는가, 수없이 자문했죠."한국적 재즈라는 실천론을 거쳐, 솔로 악기는 국악기로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색소폰 등 양악기는 빠지고 꽹과리, 태평소, 대금이 빈 자리를 메운 연유다.
3개월 전부터 재즈 클럽에서 자신의 작업 성과를 슬슬 보이고 있다. "특히 '경복궁타령'이 인기예요. 서울대 음대 출신으로 이탈리아 유학 갔다 온 바리톤 박준서의 클래식 목청이 별미지요."예술 전문 채널 아르테에서 가끔 이들의 모습이 비친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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