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말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글쓰기는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시험 볼 때마다 걱정돼요. 책을 여러번 읽어도 이해가 잘 안 돼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번 달 초 서울 경희대에 이런 내용의 대자보가 나붙었다. 학생도우미나 전용 수업 개설 등 외국인 유학생들의 요구가 서툰 한글로 적혀 있었다. 경희대에 재학 중인 1,400여명의 외국인 학생들은 자신들의 대표자를 뽑아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국내 대학 최초의 '외국인 유학생' 대표가 나왔다. 중국 칭다오(靑島) 출신의 유학생 허윈(賀云·25)씨가 그 주인공.
12일 경희대에 따르면 이 대학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허씨는 지난 9일 치러진 경희대 '총외국인 유학생회' 선거에서 외국인 학생 96%의 찬성으로 회장에 당선됐다. 부회장에 당선된 중국 내몽골 출신의 호텔경영학과 3학년인 순쯔웨이(孫志偉·22)씨와 앞으로 1년 간 외국인 학생들을 대변한다.
허씨는 "아무도 외국인을 대변해줄 사람이 없는 데다 외국인 학생은 열심히 공부를 해도 언어의 벽에 부딪쳐 낮은 성적을 받는 때가 많다"며 "이런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없애주고자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허씨의 첫째 공약도 일대일 멘토링을 통한 한국어 수준 향상이다. 이외에도 유학생 장학금 늘리기와 다양한 식사메뉴, 교내 외국인 전용 과목 증설 등을 내걸었다.
허씨는 "한국 대학이 굉장히 민감해 하는 '국제화'는 결국 외국인 학생의 숫자에 불과한 것 같다"며 "정작 유학생들은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유학생들의 고충을 토로했다.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에 반해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는 그는 "4년 가까이 한국에 살고도 한국어 실력이 생각만큼 늘지 못한 건 한국인 친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며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저절로 우애를 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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