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교통카드사업자 ㈜유페이먼트는 최근 카드사들에게 거액의 진입비용을 내라고 압박하고 있다. 신한카드 30억원, 삼성 현대 롯데카드 각각 15억원, 농협 11억원, 외환 하나SK 씨티카드 각 7억원 등이다. 진입비용은 후불교통서비스 카드결제 참여 대가다. 유페이먼트는 이달 안에 카드사별로 참여 여부를 알려달라고 통보한 상태다. 카드사들은 진입비용이 구체적 근거 없이 카드사 규모에 따라 임의적으로 결정된데다, 액수가 크다며 반발하고 있다. 다만 농협은 해당 지역이 최원병 회장의 출신지인 탓인지 홀로 참여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와 경북 포항시 교통카드사업자인 한국스마트카드도 일부 카드사에 5억원의 인프라 개발비를 요구하고 있다. 카드사 관계자는 "진입비용이나 개발비 자체도 부담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면 다른 시ㆍ도의 교통카드사업자와 재계약시 카드 수수료 인하(혹은 정산수수료 인상) 및 추가 비용 요구가 이어질까 봐 더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12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전방위적 수수료 인하압박으로 동네북 신세가 된 카드사들이 수수료 인하뿐 아니라 이처럼 각종 무리한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 전 경기ㆍ인천 교통카드사업자 이비카드㈜는 정산수수료 인상(카드 수수료 인하)을 요구했다. 일방적으로 협상기간(내년 2월)까지 못박았다. 고객이 교통비를 카드로 결제하면 카드사가 일부를 가맹점 수수료로 떼고 정산해 교통카드사업자에 돌려주고 있는데, 가맹점 수수료를 깎아주거나 정산수수료를 높여달라는 것이었다.
기세 등등하던 이비카드는 그러나 중소자영업자 때와 달리 오히려 자신들에게 비난이 쏠리자 요구를 자진 철회했다. 이미 정산수수료(2.0~2.4%)가 가맹점 수수료(1.5%)보다 높아 카드사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후불교통카드는 공공성이 있는데다 해당 고객의 신용판매 등 이용비율이나 빈도가 그렇지 않은 회원보다 10~20% 높아 역(逆) 마진을 감수하고 있는데, 수수료를 더 깎아달라는 건 너무하다"고 하소연했다.
주유소들이 수수료 인하를 놓고 실력행사에 나선 것도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다. 주유소 가맹점 수수료는 업계 최저수준(1.5%)이다. 그러나 주유소들은 "세금이 50% 가까이 차지해 실제 부담은 3%에 이르니 더 깎아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그런 사정을 감안해 최저 수수료를 적용하고 있고, 세금을 포함해 카드 결제를 받는 건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향락문화, 지하경제의 온상이란 오명 탓에 카드 수수료 인하 공개요구는 생각지도 못했던 유흥업소마저 들썩이고 있다. 이에 대해 카드사 관계자는 "소비를 권장할 업종도 아니고, '카드깡' 등 사고율도 높아 추가인하는 어렵다"고 말했다. 여기에 병원이나 의원, 한의원 같은 상대적으로 형편이 괜찮은 업종들도 슬그머니 수수료 인하 요구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 카드사에 수수료 인하를 공식요청하기보다 여론의 힘에 기대 장외투쟁부터 시작하는 양상이다. 주유소를 포함한 소상공인단체가 15일 카드사 2곳을 타깃으로 정해 결제거부를 하겠다고 벼르는 것이 대표적 예다.
경제가 워낙 안 좋다 보니 대기업인 카드사가 수수료를 낮추면 어려운 중소 자영업자들의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단순논리가 과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게 카드사들의 시각이다. 카드사용 확산으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소비가 늘어나는 순기능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수수료 인하 요구 확산은 카드사들의 자업자득이라는 면도 부정할 수 없다. 수수료 원가 공개요구를 업무기밀이라며 거부하고 있고, 수수료 체계 기본 골격을 20년 이상 그대로 유지한 채 실력행사에 나서야 찔끔 인하해주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치하고 있는 금융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실에 맞지 않는 수수료 책정 근거부터 합리적으로 다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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