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멧돼지 도심 출몰 늘어나는 이유도 "온난화 탓"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멧돼지 도심 출몰 늘어나는 이유도 "온난화 탓"

입력
2011.12.11 12:11
0 0

3일 서울 도봉구 도봉산 등산로에 멧돼지가 나타났다. 소방당국과 유해조수감시단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1시간 만에 멧돼지를 사살했다. 이보다 앞서 1일 부산 금정구에 나타난 멧돼지는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전국 도심에 멧돼지가 출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멧돼지가 도심에 나타난 횟수는 2009년 31회에서 지난해 79회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올해는 8월 기준으로 벌써 65회다. 멧돼지가 늦가을에서 겨울에 주로 출몰하는 점을 감안하면 최고치를 경신할 수 있다. 환경부 자연보전국 윤태근 사무관은 "멧돼지가 도심에 나타나는 횟수가 예년보다 올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그 이유를 먹이 부족에서 찾는다. 특히 올해 도토리 흉년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도토리는 갈참나무, 떡갈나무 등에서 열리는 열매다.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봄에 수분 활동이 잘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올해는 비가 자주 내려 꽃가루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올해 도토리 결실률이 지난해의 절반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도토리가 부족해 먹이가 줄어든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멧돼지는 잡식성이지만 주로 풀과 도토리, 나무 뿌리 등을 먹고 산다. 그러나 김원명 국립환경과학원 자연자원연구과 연구관은 "이전에도 도토리 흉년이 있었는데, 올해처럼 멧돼지가 자주 도심에 나타나지 않았다"며 "먹이 부족보다는 멧돼지 서식지 확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멧돼지의 적정 서식 밀도는 100㏊당 1.1마리다. 그런데 한국은 멧돼지 서식 밀도가 3.5~4.5마리로 적정 수준보다 최소 3배 이상 높다. 윤 사무관은 "멧돼지 수가 늘면서 종 내 경쟁에서 떠밀린 멧돼지가 산에서 도심 주변 숲으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번식기와도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다. 무리를 이끄는 암컷 멧돼지는 번식기인 12월이 오기 전에 태어난 지 1년 반 넘은 수컷 멧돼지를 무리에서 쫓아낸다. 근친 교미를 막기 위해서다. 외톨이가 된 수컷 멧돼지는 낙엽이 쌓인 산을 돌아다니다가 사람 낌새라도 눈치 채면 놀라 도망간다. 김 연구관은 "시력이 나빠 빨간색과 노란색을 잘 보지 못하는 멧돼지 입장에선 수북이 쌓인 빨강, 노랑 낙엽이 없는 것처럼 보여 자신이 노출됐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놀란 멧돼지가 빨리 도망칠 수 있는 내리막길을 타고 산에서 도심으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실제 도심에 출현한 멧돼지는 수컷이 많다.

환경부는 전국에 있는 멧돼지가 25만 마리를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천적이 없어 수가 급증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멧돼지의 천적인 호랑이와 늑대가 산에서 사라진 지 오래여서 천적만으론 멧돼지가 급증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겨울철 멧돼지 새끼의 사망률이 감소한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멧돼지는 보통 4~6월에 새끼 10마리를 낳는다. 그 중 절반은 겨울철 잘 먹지도 못하면서 먹이를 찾아 어미를 계속 좇다가 탈진해 죽는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적설량이 줄고 기온이 올랐다. 좋은 잠자리를 확보하기 쉽고 이동이 수월해져 새끼 멧돼지 사망률이 줄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멧돼지 수가 급증하던 2000년대 초반 개체 수 조절에 실패한 일본은 지금까지 큰 경제적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일본처럼 되지 않으려면 멧돼지 수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환경부는 올해 10월 멧돼지 수렵장을 지난해 22개에서 30개로 늘리고, 철로 만든 포획틀을 확대 설치하기로 했다. 포획틀은 일본, 미국 등 멧돼지로 골머리를 앓는 나라에서 개체 수 조절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는 방법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지금껏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멧돼지 습성을 고려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용했기 때문이다.

한 번 헤쳐 놓은 밭에 멧돼지가 다시 발을 들이기까진 10일 정도 걸린다. 자신의 구역을 계속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멧돼지가 다니는 길목에 포획틀을 놓으면 2주간 계속 관찰을 한 뒤에야 경계심을 푼다. 밭이나 길목에 포획틀을 놨다고 해서 금방 잡을 거라 생각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김 연구관은 "포획틀 안에 넣는 미끼는 과일, 고기보다 효모와 설탕을 뿌려 발효시킨 밥이 제일 좋다"며 "나흘이 지나면 밥이 썩기 때문에 교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