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가 진중권은 스스로 진보라고 규정하지만 진보진영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진보진영에서도 욕을 먹는다. 그는 진보건 보수건 잘하면 칭찬받고, 잘못하면 비판을 받는 것이 당연한데도 우리 사회는 편가르기에 집착하는'동물의 왕국'이 되어가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는 이 편가르기 때문에 상식이 몰상식으로 취급 받게 되었다고 푸념한다. 각종 사회 현안에 끼어들어 날카로운 간섭을 하며 인문학적 대안 제시를 시도하는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트위터를 통해 A양 동영상을 보지 말라고 했는데.
"남자가 여자 만나서 섹스를 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고 동영상도 찍을 수 있다. 이를 누출시킨 것은 큰 문제다. 게다가 음모론까지 편다.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의 관심을 덮기 위해서 정권이 터트린 거라는 식이다. 사안 자체를 왜곡시키고 한 사람의 인권과 명예를 실추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O양과 B양 때도 그랬다. 트위터에서 A양 동영상을 퍼 나르면서 불필요한 가십이 생기고 있다."
-트위터에 문제점이 있나.
"장단점이 있다. 모든 매체가 그렇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서로 지적하고 자제해야 한다. 그렇다고 SNS자체를 범죄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아마도 '나꼼수' 때문일 텐데 나꼼수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옛날에는 정보를 얻으려면 텍스트를 읽어야 하는데. 지금은 사운드와 이미지로 개척을 한다. 정보를 듣는 것이다. 그걸 나꼼수가 한 것이다. 텍스트는 어렵다. 반면 사운드는 구술이고 대화체고 일상언어다. 당연히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글은 신중하다. 하지만 말은 그냥 내뱉는다. 보수 언론들은 SNS를 적대시한다. 한나라당이 망한 이유기도 하다. 인터넷, 트위터, 앱과 그 세대 자체를 적으로 돌려놓으니 나꼼수 같은 것에 얻어 맞는다. 조중동 권력이 무너진 것은 안티조선운동 때문이 아니라 매체환경 변화다. 언론은 심층적이고 권위있는 기사, 믿어도 되는 기사를 써야 하는데 신문에서 그림까지 그려서 인간어뢰설을 퍼트리는 지경까지 왔다."
-나꼼수는 어떤가.
"음모론이라는 것은 완벽하지 않다. 우리가 전지적 작가시점을 가질 수는 없다. 항상 구멍난 부분이 있다. 디도스 테러도 누가 배후인지 아직 모른다. 팩트와 팩트사이에 빈 곳이 많은데 그걸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거기에 음모론이 들어간다. 음모론의 특징은 빈 곳이 없이 모든 걸 설명해낸다. 나꼼수가 그런 걸 한다. 대부분은 사람들은 믿는 척 한다. 이를 파타피지컬(pataphysical)하다고 표현한다. 3분의 1은 진짜 믿는다. 이걸 믿으면 미신이 되므로 비판해줘야 한다. 축지법을 한다는 허경영을 믿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본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가장 황당한 것은 상식이 몰상식 취급받는 것이다. 우리편이든 저편이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적군이라도 잘한 것은 칭찬해야 한다. 자꾸 편을 가른다. 내가 이쪽 비판하다 저쪽 비판하면 '이 자식은 누구 편이냐'고 한다.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워낙 편가르기가 일상화됐다. 동물의 왕국이다. 진위나 선악의 판정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작업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호오(好惡)로 판정한다. 장 삐아제의 에 보면 아이들이 이성이 발달하기 전에는 모든 것을 호오로 판단한다. 동물들이 그렇다. 슬픈 일이다. 우리 문화수준이 낮은 편이 아닌데 왜 정치얘기만 하면 퇴화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인가.
"종합편성채널의 경우도 참여하지 않는 게 옳다고 본다. 그런데 그건 내 생각이다. 누군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참여할 수도 있다. 그런 여지를 남겨놔야 한다. 평소에 종편을 비판하던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일관성의 문제다. 그러나 김연아나 인순이에게 개념이 없다고 하는 것은 폭력이다.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다. 왜 그 사람들이 종편에 대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 가. 김연아가 붉은 띠를 매고 광장에 나와서 FTA 반대를 해야 하는 건지, 인순이가 미디어악법 반대한다고 촛불시위를 하는 것을 바라는 건지 모르겠다. 자꾸 줄을 세우는 것이다. 편가르기에 대한 강박증이다."
-지금 우리사회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다 무너진 거다. 한나라당은 무너졌고 민주당도 대안은 아니다. 그러니까 안철수에게 쏠린다. 한나라당 정권도 겪어봤고 민주당도 겪어봤지만 둘 다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뭔가는 있어야 하는데 아직 없다. 그 공백을 멘토들이 채워주고 있다. 안철수 박경철 등이다. 그들도 정치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아노미 상태다. 진보정당이 대안이 되어야 하는데 그들도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합진보정당이 됐다지만 숫자만 합쳤다. 질적인 반성과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진보의 재생산이 끊겼다. 대학에서도 그렇다. 디지털시대인데도 산업혁명시대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 대중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나꼼수도 그렇고, 가 100만부씩 팔리는 것도 그렇다. 대안으로 뜨는 게 안철수다. 그는 정치적 실체가 없다. 그가 정당정치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멘토를 하는 것과 정책 결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2012년은 혼돈의 시대가 될 것 같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반MB다. 나꼼수 열풍도 그거다. 대중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것이다. 통로만 있으면 폭발한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오히려 소박한 기대다. 경제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는다. 경제대통령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옥죄는 것이라도 풀어주면 좋다는 것이다. 안철수가 잘 본 것은 하나다. 시장문제다. 시장이 제대로 굴러가면 복지 해결이 가능하다.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하면 대기업이 착취를 한다. 단가를 깎는 다든지, 중소기업이 만든 성과를 뺏는다. 대기업이 동네까지 들어온다. 대기업이 밖에 나가서 경쟁을 해야 하는데 학교 앞 조폭식 삥 뜯기를 하고 있다. 안철수가 얘기한 것이 그것이다. 시장개혁이 중요하다. 고용창출은 90%이상을 중소기업이 하는데 이대로라면 안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정운찬이 말하는 동반성장이다. 거기서 대기업에 돈 내라고 하는데, 돈 낼 필요 없다. 뜯어먹지만 말아도 된다. 중소기업이 거지인가. 공정하게 게임의 규칙만 지키면 된다. 이를 정치권이 해야 하는데 정치권이 대기업의 식솔이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촌철살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트위터보다는 인터넷 게시판이 좋다. 트위터는 140자다. 하수들은 동작이 크고 수가 복잡하다. 고수는 반대다. 간명하게 한 수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나는 막싸움을 좋아한다. 네티즌들은 고수들이 아니다. 단순한 생각에서 덤벼들다가 내가 이리저리 쳐주면 따라온다. 트위터는 그게 잘 안된다. 인터넷게시판은 싸움을 시작하면 수백명이 함께 본다. 몇천명까지 상대가 가능하다. 한참을 싸운 뒤에는 같이 술도 먹는다. 그러나 트위터는 일방적이다. 1:1로 상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대거 끌어들일 수가 없다. 오히려 답답하다."
-독설을 즐기는데 괴롭히는 사람들은 없나.
"늘 괴롭힌다. 그러나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화를 내는 것은 좋다. 화내면서 푸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욕해도 좋다. 나는 사람들을 다독거리고 칭찬하는 것 아니라 약을 올린다. 생각하고 엉기게 만든다. 조금 심하게 건방진 느낌으로, 살짝 재수없게, 열받게 건드린다. 그래서 덤비면 슬슬 상대해준다. 정치적인 것보다는 인문학적으로 접근한다. 인문학적 임무는 진보건 보수건 공부를 하게,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잘못하면 바보가 되니까 인터넷 검색이나 생각이라도 한번 하고 덤벼들게 만든다. 우리가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도덕이니 뭐니 다 팽개치고 잡는다면 퇴보라고 본다."
-방금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이라고 얘기를 했는데. 진보를 얘기하는 건가.
"내가 성향이 그렇다. 진보라는 것이 민주당을 일컫는 것으로 되어버렸다. 원래는 진보정당을 의미하는 것이다."
-풍자와 해학을 강조했는데.
"풍자는 상대를 아프게 찌르는 것으로 찌른 쪽만 웃는 것이다. 하지만 해학은 상대의 중요하지 않은 약점을 꼬집어 상대를 같이 웃게 하는 것이다. 이게 가장 좋다. 풍자도 원래는 물리적인 공격을 언어의 폭력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잔혹성을 줄이는 방법이다. 타도하자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비꼬아서 웃게 만드는 것이 풍자의 역할이다. 문제는 풍자와 해학으로 상대에게 적개심, 복수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형식을 이용해서 증오심을 부추기는 것은 안된다. 나꼼수도 그런 면이 있다. 그냥 웃는 것이 좋다."
-강용석 의원이 개그맨 최효종을 고소했다.
"앞으로 강의원 팬이 되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를 최연희, 진성호의원 계열로 봤다. 하지만 최효종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면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패러디를 하기 위해서 수염을 길렀다는 것, 강의원 아들이 '아빠 보고 친구들이 강고소라고 한다'는 것을 트위터에 올린 것을 보고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안상수 의원의 연평도 사건 이후에 심심했는데 강의원 때문에 즐거워 졌다. 이분을 여풩?방송국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
-디지털 시대에 예술이란 뭔가.
"상상력과 기술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잡스가 기술에 대해서 뭘 알았겠나. 기계에 버튼을 없애라고 하면 기술자들이 처리한다. 점점 생산 자체가 예술에 가까워진다. 상상력이 중요시되면서 산업시대는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밥을 굶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질적인 충족을 유지하는 것은 버는 돈의 10분의 1이면 된다. 휴대폰 사용료도 최저 생계비에 들어간다. 나머지는 판타지 산업이다. 일종의 브랜드 내러티브 등이 중요시된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문화를 흡입하는 것이다. 예술성이 없는 기술은 기능으로 전락한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유인촌 전 문화부장관이 이 싹을 잘라버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친 것이 그 사건이다. 당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미디어아트팀을 만들어서 세계에서 활동하게 만들려고 했다. 영감을 직접적인 기술개발에 주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관료들은'돈 줄 테니 상상력 내놔라'는 식이었다. 사업한지 1년도 안되었는데 성과를 내라는 식이다. 황당했다."
▦진중권은 누구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미학 석사를 마친 뒤 독일에서 유학했다.현재 직책은 없고 문화비평가, 인터넷논객의 타이틀이 붙어있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중앙대와 성공회대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로 필리핀에 거주하면서 상업용 경비행기 운항 자격증에 도전하고 있다. 2006년부터 비행을 시작했고 상업용 운항 자격증을 따면 필리핀에서 여행객들을 실어 나를 계획이다. 부인은 독일 유학시절 만난 일본인이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사진=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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