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지만, 황당하고 착잡하다."
요즘 보건복지부 내에서 최원영 전 차관을 두고 오가는 말이다. 퇴직 후 복지부를 상대로 법정 분쟁을 벌이는 로펌으로 옮겨간 그의 행보 때문이다. 또 다른 복지부 관료 출신도 복지부와 소송을 벌이는 이익단체로 이미 이직해 착잡함을 더하고 있다.
행정고시 24회 출신인 최 전 차관은 지난 10월 갑작스레 퇴직을 결정했다. 임채민 장관은 취임 직후 최 전 차관에게 "함께 일해보자"며 유임할 뜻을 전했다고 알려졌지만 그는 스스로 옷을 벗었다. "동기가 장관으로 왔으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결정이다", "후배들의 승진 길을 열어주려 용퇴했다"는 등 해석이 많았던 것도 그래서다. 최 전 차관 본인도 "당분간 쉬려고 한다"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달라는 의중을 내비치기도 했다.
퇴직 40여일 후, 그가 새로 정착한 곳은 다름 아닌 대형 법무법인인 '태평양' 고문 자리였다. 태평양은 복지부를 상대로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영상장비 의료수가(건강보험 진료비) 인하결정을 취소하라며 소송을 제기한 대한병원협회의 변론을 맡고 있는 곳이다. 더구나 최 전 차관은 재임 당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수가 인하를 결정한 당사자다. 그런데도 본인이 공직자일 때 결정한 정책에 불만을 품고 소송을 제기한 측을 변호하는 법무법인에 간 것이다. 현재 소송은 1심에서 복지부가 패소해 항소한 상태다.
더욱이 최 전 차관은 '4급 이상 퇴직공무원은 퇴직 후 2년 동안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으로 전직을 제한한다'는 개정 공직자윤리법 시행(10월 30일) 열흘 전인 10월 19일에 퇴직해 입길에 올랐다. 복지부의 한 공무원은 "왜 하필 우리와 소송 상대인 곳으로 가셨는지 황당하고 착잡하다"며 "선배인데 배신감까지 든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복지부를 상대로 이 소송을 제기한 병협의 이상석 상근부회장도 복지부 출신이다. 행시 23회인 이 부회장은 복지부 법무담당관, 아동복지과장 등을 거쳐 지난 해 병협으로 자리를 옮겼다. 복지부 출신들이 퇴직 후 나란히 이익단체의 편에 서서 '친정'을 옥죄고 있는 셈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 부장은 "공직에 있는 동안 얻은 정보와 자료, 인맥을 결국 자신의 '재취업'에 활용한 것"이라며 "특히 업무연관성이 있던 공급자 편에 서는 행보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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