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영국을 제외하고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는 재정조약을 체결키로 사실상 합의하면서 유럽 통합이 속도를 내게 됐다. 영국은 EU 조약 개정을 막아내긴 했지만 EU 27개 국 중 23개국이 별도의 재정조약 체결에 동의하면서, 영국이 유럽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국의 동이 없이 EU 국가 대부분이 새 조약에 합의한 첫 사례”라며 “영국이 고립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과거에도 영국이 참여하지 않은 조약이 있었지만 그때는 EU가 미리 양해를 구하고 영국도 동의를 했었다. 1991년 유럽공동체(EC)를 EU로 바꾸는 마스트리히트조약을 체결할 때는, 영국이 단일 통화를 사용에 반대하자 다른 국가들이 영국의 독자통화 사용을 예외로 인정하면서까지 설득에 나서기도 했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 조약 개정과 관련해 영국의 금융산업을 예외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EU 조약 변경이 영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회의장에서는 “더 이상 영국만을 예외로 할 순 없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캐머런 총리가 회담 직후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통해 협상 결렬의 책임이 자신에게 없다는 점을 강조한 사실을 지적했다. FT는 “영국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됐다”며 “(EU 정상) 모두에게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도 “정치적 거래를 통해 영국 금융서비스 산업 보호를 보장받으려 했던 캐머런 총리의 심각한 패배”라고 지적했다.
특히 새 재정조약 불참 의사를 밝힌 헝가리와 유보 입장을 밝힌 스웨덴 체코가 9일 오후 “의회와 협의를 거쳐 새 재정조약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입장을 바꾸면서 영국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모양새다. 일부에서는 영국이 고립을 피하기 위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유로화를 쓰는 유로존 17개국과,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6개국 등 23개국은 내년 3월까지 새 재정조약 체결을 마무리 하기로 했다. 조약이 체결되면 참가국은 재정적자의 비중을 국내총생산(GDP)의 3%, 누적채무는 60% 이내로 유지하는 ‘황금률’을 지켜야 하며 위반 시 자동적으로 유럽사법재판소(ECJ)의 처벌받게 된다. EU 집행위원회는 예산 편성단계부터 참가국의 재정을 규율 하도록 역할이 확대된다.
그러나 새 재정조약은 EU의 공식 체제로 출범하는 게 아니라 정부 간 조약인 만큼 규율의 집행과 처벌의 강제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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