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감독은 축구인 모두가 우러러 보는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이자 얼굴이다. 그럼에도 한국축구를 총괄하고 있는 대한축구협회는 아무런 언질과 적법한 절차 없이 하루 아침에 조광래 대표팀 감독을 헌신짝처럼 내쳤다. 축구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꼴이다.
얼마 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던 이영표(밴쿠버)는 트위터를 통해 "이제 축구인들이 팬들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됐다"고 개탄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까지 진출했던 나라에서 여전히 '밀실행정'과 외부의 입김으로 축구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조광래 감독은 9일 마지막 기자간담회를 끝으로 결국 대표팀 사령탑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제 후임 사령탑 선임에 관심이 쏠린다. 협회는 "이달 중으로 한국 축구를 잘 아는 지도자로 선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후보군으로 꼽힌 압신 고트비 시미즈 S펄스 감독과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 최강희 전북 감독이 모두 '독이 든 성배'라 불리는 대표팀 사령탑직을 고사하고 있다.
일부 지도자들은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한 경기를 남겨두고 누가 감독직을 맡으려 하겠느냐"며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만약 내년 2월29일 쿠웨이트전에 패하기라도 한다면 후임 사령탑은 한 순간에 역적으로 몰릴 게 불 보듯 뻔하다. 조광래 감독도 이에 대해 '도박 중의 도박'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회전문 인사'가 다음 절차라는 게 축구계의 중론이다. 시나리오 대로 '친 협회' 인사를 내세워 사태 수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협회가 자주 써 먹었던 미봉책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앞서 박성화 현 미얀마 대표팀 감독이 협회에 '징집' 당한 바 있다. 박 감독은 당시 부산 아이파크 감독에 부임한 지 17일 만에 적을 옮겼다.
만약 한국축구가 브라질 월드컵 진출에 실패한다면 과연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인가. 협회인가, 조광래 감독인가.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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