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연구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사법부 내에 구성하자고 제안한 김하늘(43ㆍ사법연수원 22기)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동료 법관 170여명의 동의를 받아 대표 작성한 건의문을 9일 대법원에 제출했다. 특히 김 부장판사는 한미 FTA 문제에 대한 사법부 차원의 입장표명도 검토해 달라고 건의, 양승태 대법원장의 수용 여부가 주목된다.
대법원에 따르면 김 부장판사는 이날 '대법원장님께 올리는 건의문'이라는 제목의 A4용지 10쪽 분량 글을 소속 법원장인 김종백 인천지법원장에게 냈고, 김 지법원장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를 찾아 양 대법원장에게 이를 전달했다. 당초 대법원장을 직접 만나 건의문을 제출할 뜻을 밝혔던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과의 조율을 거쳐 이 같은 제출방식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건의문에는 부장판사 10명 등 170명 법관의 이름이 함께 기재됐다.
건의문에서 김 부장판사는 특히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 조항이 사법주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강조하며 "대법원 산하에 TF를 설치해 한미 FTA가 우리나라 사법주권을 중대하고 심각한 수준까지 제한하고 있는지 여부를 연구, 검토하는 조치를 취해 달라"고 밝혔다. 이어 "연구결과에 의해 한미 FTA에 대한 사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 적절한 과정을 거쳐 그 입장을 확립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대외적인 입장표명 여부를 검토해 주실 것을 건의드린다"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저희 판사들은 네거티브 방식에 의한 개방, 역진방지 조항,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등 몇 개 조항이 한미 FTA의 불공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법률적 관점에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는 데 주목하게 됐다"고 했다.
특히 논란의 핵심인 ISD 조항이 사법주권을 침해할 수 있는 근거를 조목조목 설명하는 데 상당한 비중을 할애했다. 그는 "미국에 ISD 조항은 서부시대의 총잡이들이 차고 다니는 총과 같다"며 "우리 정부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취하려 할 때마다 미국 기업한테 소송을 당할까 봐 눈치 보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장판사는 또 사법부의 TF 구성이 '삼권분립 위배'라는 일부 비판에 대해서도 "이제껏 국회에서 심의 중인 법률안에 대법원이 법률적 의견을 제시한 경우는 많았고, 어느 누구도 비판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한미 FTA는 국내 법률과 동등한 효력이 있는 조약으로, 법관들이 내용을 연구하고 법률적 문제점을 검토하는 것은 삼권분립 위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일단 170여명 법관의 뜻이 담긴 건의문인 만큼, 다각도의 검토를 거쳐 처리 방안을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양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에 건의문 내용의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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