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 토플러와 작별하라/댄 가드너 지음ㆍ이경식 옮김/생각연구소 발행ㆍ480쪽ㆍ1만7000원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1984년에 각각 4명으로 구성된 4개 집단에 향후 10년 동안의 경제성장률, 인플레이션율, 환율, 유가 등을 예측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이들 집단은 각각 전 재무장관들, 다국적기업 회장들,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학생들과 환경미화원들이었다.
과연 10년 뒤 누가 가장 사실에 가까운 예측을 했을까. 어처구니없게도 적중률 평균은 환경미화원과 기업 회장이 1위였고 전 재무장관들이 꼴찌였다.
경제 예측은 전혀 무의미한 작업이라고 설명하기 위한 것이 이 실험의 목적은 물론 아니다. 미래 예측은 어렵고, 비록 전문가라 할지라도 그다지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캐나다의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앨빈 토플러와 작별하라> 에서 말하는 것도 비슷하다. 앨빈>
그는 아널드 토인비가 <역사의 연구> 에서, 폴 에를리히가 <풍요로움의 종말> 에서, 로버트 쉴러가 <야성적 충동> 에서, 앨빈 토플러가 <미래의 충격> 에서 그리고 자크 아탈리가 <밀레니엄> 등에서 내놓은 전망들이 얼마나 틀렸는가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야기한다. 밀레니엄> 미래의> 야성적> 풍요로움의> 역사의>
하나같이 굉장한 눈길을 끌었던 석학들의 이런 예측이 결국 틀리고 만 것은 왜일까. 저자는 필립 테틀록 미 캘리포니아대 심리학 교수가 1980년대 중반 제2의 냉전의 향방을 예측하기 위해 여러 해에 걸쳐 전문가들에게서 의견을 수집한 결과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테틀록은 무려 2만7,450개의 견해를 수집했고 예측의 핵심은 옛 소련의 변화 방향이었다. 소련은 조사 얼마 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개혁에 시동을 걸기 시작하면서 급변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이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를 파악하기 딱 좋은 시점이었다. 당연히 변화를 잘 예측한 사람도, 전혀 엉터리로 예측한 사람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차이가 어디에서 생겨났느냐는 점이다. 이념이 달라서? 전문성이나 수집한 정보가 차이가 나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테틀록이 '다트를 던지는 침팬지'보다 못하다고 할 만큼 결과가 나빴던 전문가들은 '예측해야 할 문제를 어떤 핵심적인 이론적 주제로 환원'했고 그들의 전망은 빵틀로 붕어빵 찍어 내듯 했다. 평균보다 높은 성적을 낸 전문가들에게는 그런 '빵틀'이 없었다. 그들은 다양한 기준으로 정보와 생각을 뽑아낸 다음 이것을 종합하고 자신의 예측이 틀리면 겸허하게 판단 기준 자체를 바꾸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세상을 복잡하고도 불확실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걸 전혀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 역시 이 같은 현상을 잘 설명해주는 심리학 이론이다. 인간은 자신이 그리고 있는 이치에 맞게 세상을 해석한다. 믿음이 크면 클수록 그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를 수용하기가 어려워진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다. 정치에 대한 오해나 왜곡된 생각을 갖기 쉬운 부류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보다 오히려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정보도 많은 사람들이다. 자신이 정치를 잘 안다는 믿음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과연 내년에 한국에서, 또 세계 각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열린 마음과 다양한 정보로 예측은 하되 너무 믿지는 마라. 이 책의 메시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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