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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경상도 남자의 '포켓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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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경상도 남자의 '포켓치프'

입력
2011.12.0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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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양복에 '포켓치프'를 하고 출근했습니다. 오래전 선물을 받아 놓고 잊어버렸는데 날씨가 추워져 겨울 양복을 꺼내 입다가 문득 포켓치프 생각이 났습니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회색 양복에 파란 포켓치프를 꽂으며 멋쩍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학에서 만날 동료나 학생들이 보일 반응이 더 걱정이었습니다. 경상도에 '뽄쟁이'이란 탯말이 있습니다. 멋쟁이를 뜻하는 말입니다. 경상도 남자가 뽄쟁이가 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특히 저처럼 자유분방한 옷차림으로 살아온 남자에겐 정장 양복에 넥타이만 해도 몸이 근질거리는데 포켓치프는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저를 괴롭힌 '머피의 법칙'이 있었습니다. 저학년 때 어머니는 싫다는 저에게 억지로 흰색 스타킹을 입혀서 보내곤 하셨습니다. 그러면 꼭 스타킹이 찢어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 저는 새것에 대한 공포가 있었습니다. 새 신도 집에서 한참 신어 헌신이 되면 학교에 가는 것이 편했습니다.

그런 제가 포켓치프라니! 눈을 질끈 감고 등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제가 포켓치프를 한 사실을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 스스로 포켓치프를 홍보하는 난센스가 있었습니다. 경상도 남자가 뽄쟁이가 되는 일, 남의 눈에 나거나 드는 것이 다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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