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국영방송이 이번 주 초 자국 내에서 격추시켰다고 주장한 미국의 최첨단 무인 정찰기 RQ-170의 영상을 8일(현지시간) 공개했다. 미국의 극비 군사기술이 이란을 거쳐 러시아 등지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영상 속 무인기의 진위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2분 가량 이어진 영상 속의 하얀색 기체는, 사진을 통해 알려진 RQ-170과 비슷했다. 그러나 외관에 흠이 없고 말끔해, 격추됐다는 이란의 주장과는 차이가 났다.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이란혁명수비대 사단장은 “혁명수비대와 육군이 합동으로 정교한 전자 공격을 펼쳐 격추했기 때문에 무인기가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는 영상 속 무인기가 분실된 미군 무인기인지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영상 공개로 미군의 첨단 기술이 이란의 손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아지자 국제 사회의 우려는 한층 커지고 있다. RQ-170은 미 중앙정보국(CIA) 소유의 극비 정찰기로 미국 정부가 한때 그 존재를 부인할 만큼 극도로 민감한 군사작전에 활용됐다.
뉴욕타임스는 이 무인기가 레이더 탐지에 걸리지 않고, 같은 장소에 오래 머물면서 움직이는 것의 영상을 전송할 수 있는데다, 핵 연구용 화학물질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탑재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2009년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감시하기 위해 한국에 보내기로 한 무인기도 RQ-170이다.
미국은 무인기 추락 당시 기밀 유출을 막기 위해 이란에 제한된 공습을 하거나 특수부대를 파견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으나 전쟁 유발 가능성이 있어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미국은 이란의 핵 시설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핵심 기술까지 노출시킨 꼴이 됐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연구원 P.W.싱어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무인기 기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며 “아마 지난 며칠간 베이징과 모스크바에서 테헤란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꽉 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상 속 무인기가 진짜가 아닐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온라인 군사전문매체 글로벌시큐리티의 군사기술 전문가 존 파이크는 영상 속 무인기가 “최신 기술을 갖춘 항공기라기보다는 퍼레이드를 위해 만든 실물 크기의 모형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란은 무인기를 띄워 자국을 감시한 미국에 공식 항의하는 한편 유엔에 미국 규탄 성명을 내달라고 요구했다. 이란은 모하마드 카자이 주 유엔 이란 대사 명의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나시르 압둘아지즈 알 나사르 유엔총회 의장 등에 보낸 서한에서 “(이란에 대한 미국의) 위험하고 불법적인 행동을 중단시킬 분명하고 실질적인 조치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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