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리트윗(RTㆍ재전송)될 때마다 500원을 적립해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겠습니다.”
평소 기부에 관심이 많았던 회사원 한모(30)씨는 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트위터에 일명 ‘RT 기부(리트윗된 만큼 기부)’글을 올렸다가 놀라운 경험을 했다. 당시 팔로워가 1,000명이 되지 않던 한씨의 글이 트위터 최고의 이슈로 떠오른 것. 한씨의 글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3,000번이나 리트윗됐고 이튿날까지 재전송 횟수는 1만 건에 이르렀다. 트위터 사용자들의 칭찬과 응원 메시지도 쏟아졌다. 놀란 한씨는 곧바로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아 RT기부를 중단한다’는 글과 함께 300만원 기부 영수증을 사진으로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이후 트위터 공간에 ‘RT 기부’가 유행처럼 번졌다. “불우이웃 돕기 차원에서 이 게시물이 리트윗될 때마다 100원씩 기부하겠다”“이 글이 RT될 때마다 100원을 적립해 광화문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내고 오겠다”와 같은 RT 기부 글들이 줄을 이었다. 이 역시 수백~수천 번씩 리트윗되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소셜 기부가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러나 RT 기부의 영향력을 파악한 기업들이 소셜 기부를 저렴한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홍보수단으로 인식하면서 순수했던 의미가 변질되고 있다.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광고하는 계정을 팔로우하거나 홍보성 글을 리트윗하는 만큼 기부하겠다는 내용의 이벤트를 미끼로 던지며 기업ㆍ제품 홍보에 나선 것이다.
한 성형외과는 홍보용 트윗 계정의 글이 리트윗되는 만큼 100원씩 기부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꾸준히 올렸다. 덕분에 이 병원 광고 글은 월 1,000여 건이나 리트윗됐다. 적은 비용으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본 셈. 한 증권사와 신발 전문 매장은 홍보 계정을 팔로우하는 조건으로 기부 이벤트를 열어 팔로워 수만 명을 모았고, 모 게임업체는 “팔로워가 2,000명을 넘어서면 에너지 극빈층에 연탄 2,000장을 공급하겠다”는 트윗을 올리며 홍보 계정의 팔로워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홍보업체 관계자는 “SNS에서는 리트윗ㆍ팔로잉 대가로 경품을 주는 것보다 기부를 내세우는 게 참여율이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셜 기부를 내세운 홍보 전략으로 선회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소셜 기부를 홍보의 주요 도구로 사용하기는 대기업들도 마찬가지.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엔진 빙(Bing)은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이 있었던 지난 3월 “리트윗당 1달러, 최대 10만 달러(약 1억1,000만원)를 일본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트윗과 함께 검색엔진 페이지를 링크했다. 이 글을 접한 트위터리안들은 비난의 글을 쏟아내며 리트윗했고 여론의 뭇매를 맞은 마이크로소프트 트위터 담당자는 7시간만에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들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의 사연을 전면에 내세워 소셜 댓글을 다는 조건으로 기부를 하는 형태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소셜 기부를 표방한 홍보 글을 접하는 트위터리안들의 반응은 차갑다. 트위터를 통해 의견을 묻자 한 트위터리안(아이디 @agape91)은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게 진정한 기부”라고 꼬집었고, 다른 트위터리안(@Jinyoung_badgirl)은 “기부에 홍보 조건을 달며 생색내는 건 욕먹기 딱 좋다”고 지적했다. “어려운 사정을 가진 사람의 사연보다 기부자 본인이 홍보되는 것엔 거부감이 든다”(@liveJ), “기부하는 마음보다 홍보가 목적인 게 뻔히 보인다”(@Roueny)는 등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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