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농업기술원은 1999년부터 장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다 2005년 우연히 꽃잎이 녹색 빛깔을 띠는 장미 ‘그린뷰티’를 발견했다. 빨강과 노랑색 이 주종인 장미들 사이에서 녹색 장미가 시선을 끈 것은 당연한 일. 더욱이 이 품종은 한 줄기당 꽃 5~7송이를 수확할 수 있어 일반품종(줄기 당 3~4송이)에 비해 생산량이 많고, 꽃의 수명도 14일로 일반품종(7~10일) 보다 길어 상품성도 높았다. 해외에서도 문의가 이어졌다. 해외수출을 타진한 끝에 2008년 네덜란드ㆍ에콰도르ㆍ케냐에서 직접 재배하며 적응테스트를 통과했고, 그 해 네덜란드 판매대행업체와 나무 1그루를 수출할 때마다 1달러의 로열티를 받기로 계약했다. 2009년 에콰도르 콜롬비아, 지난해엔 포르투갈 스페인, 올해는 이란, 스페인, 인도까지 시장을 넓혀 모두 23만그루를 판매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린뷰티를 개발한 이영순 원예육종팀장은 “국내에서 개발한 꽃 중 로열티를 받고 판매한 것은 그린뷰티가 처음”이라며 “기술원이 11월 현재까지 받은 누적 로열티만 2만달러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분야는 국제 경쟁력이 취약한 농업. 그러나 아이디어 하나로 거친 FTA 파고를 뚫고 오히려 해외진출의 기회를 잡는 성공 사례가 늘고 있다.
‘그린뷰티’처럼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수출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화훼산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밖에도 가시가 없어 생산자나 소비자들이 다루기 용이한 장미 ‘딥퍼플’ 꽃의 지름이 7㎝로 일반장미의 2배 크기인 ‘아이스베어’수확까지의 기간이 짧아 연간 7회 수확(보통 장미는 5회)이 가능한 진분홍 장미 ‘라파이어’ 등 4개 품종을 지난해 추가로 개발해 8만그루를 팔았다. 해외 구입문의가 몰려 내년엔 장미 신품종 100만그루 수출 돌파를 기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채소의 분발도 눈에 띈다. 그 중에서도 병충해에 강한 고추 ‘무한질주’가 최고 히트상품이다. 경기 이천시의 종묘업체 ‘신젠타종묘’에 몸담았던 지영권(43)씨가 9년 노력 끝에 2007년 내놓은 무한질주는 바이러스에 강한 품종과 고추를 말라 죽게 하는 역병과 청구병 등에 강한 품종을 교배해 개량한 품종이다. 농약 살포를 줄여 노동력과 생산비를 절감할 뿐 아니라 단위면적(330㎡) 당 생산량이 일반 품종보다 20%가량 많은 700㎏을 생산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지씨는 “탄저병이 유행한 올해에도 650㎏을 생산했다”며 “무한질주의 재배면적도 종자 보급 첫 해인 2008년 790㏊에서 올해 2,200㏊로 3배 가량 늘어나 전체 300여개 품종 중 5%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가공용으로 개발한 고구마 ‘신자미’는 항암 성분인 ‘안토시아닌’ 함량이 높은데다 1,000㎡ 당 4,000~5,000㎏ 생산해 일반 고구마에 비해 역시 생산성이 2배 높다. 또, 진한 보라색을 띠어 막걸리나 고구마라떼 등에 첨가용으로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개인육종가 박태훈씨가 개발한 대파 ‘황후’는 줄기가 길고 단단해 여름철 태풍이나 폭우에도 쓰러지지 않고 잘 자란다. 황후는 조만간 국내에서 주로 재배되는 일본 품종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종자원 최근진 재배시험과장은 “국내 육종가들의 노력으로 위기에 빛을 발하는 농작물이 늘고 있다”며 “정부도 우수 종자를 육성하는 ‘골든 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 등을 통해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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