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한 방송 앵커가 '산타는 없다'고 말했다가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사과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는 뉴스 도중 "아이들이 산타클로스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좀 더 일찍 배워야 한다. 산타는 연말 시즌 자선을 상징하는 것이지 굴뚝으로 들어와 선물을 주고 가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어린이들에게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과 희망을 앗아가기 때문일 테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거짓말 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산타에 관해서는 늘 거짓말을 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이런 것을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 정도 가면 로바니에미라는 도시가 나온다. 이곳은 핀란드 북부지역으로 공항에 내리면 북극선이 표시돼 있어 이를 밟아보는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다. 다시 이곳에서 8km를 더 가면 한적한 숲 속에 산타마을이 있다. 산타 할아버지가 사는 곳이다. 이 할아버지는 빨간 산타 모자를 쓰고 은빛 턱수염을 길러 실제 상상 속의 산타와 유사하다. 실제로는 여러 명의 산타가 교대근무를 한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산타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고 산타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세계 각국 어린이들이 보내는 편지에 일일이 그 나라 언어로 답을 해주는 성의도 보인다. 산타마을은 노르웨이 오슬로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 조성돼 있지만 로바니에미의 것이 가장 성공한 것으로 인정된다. 산타는 자선을 베푸는 자의 전형으로 크리스마스에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하는 상상의 인물이다. 경제 불황이 크리스마스 선물 리스트도 바꿔놓았다는 외신보도도 나왔다. 이제는 미국 어린이들이 산타 할아버지에게 장난감이 아니라 부모의 일자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모양이다.
올해는 우리나라 무역규모가 1조 달러를 돌파한다. 우리 경제가 수치상으로는 엄청난 성장을 했지만 서민들의 삶은 오히려 더 팍팍해지고 있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은퇴와 실직, 청년실업, 양극화 등이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역규모 1,000억 달러를 달성하며 기세등등했던 1995년 겨울보다 올해가 훨씬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저녁 무렵 퇴근길에 서부역 쪽으로 걷다 보면 어두컴컴한 육교 아래에서 대형 종이박스를 연결해 잠자리를 만들고 있는 노숙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구세군을 비롯한 각종 사회단체들이 이들을 위해 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지만 노숙인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최근 들어 노숙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계층이 급속히 늘고 있다는 것이 통계로 확인되고 있는 점이다. 1조 달러에 이르는 우리 무역규모도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해법이 되지 못하고, 자선과 기부 등의 나눔행위가 더욱 절실하다는 것이다.
최근 구세군 자선냄비에서 1억1,000만원짜리 수표가 나왔다. 이는 1928년 시작된 구세군 거리 모금 사상 1인이 기부한 최대 액수라고 한다. 이들이 바로 산타나 다름없다. 박만희 구세군 사령관은 "매년 거액을 자선냄비에 넣고 가는 노인들이 있는데 거의 같은 인물들"이라고 했다. 자선이 빈자들을 모두 구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선냄비가 가득 채워질수록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더 많은 온기를 보낼 수 있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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