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아이들 서너 명 밥값 대 준 게 전부인데 기부천사라니요. 세월이 이만큼 흘렀는지도 처음 알았어요”.
27년간 매달 초등학생 3~4명의 급식비를 남몰래 후원해 온 서울 메디아이여성병원 영양실장 전영옥(62)씨는 “몇 푼 안 되는 후원을 해놓고 칭찬을 받는 것은 죄송스러운 일”이라며 몸을 낮췄다.
영양학 석사로 기업체 영양사, 시간강사, 겸임교수 등을 거쳐온 그는 1985년부터 서울 흑석초교(당시 명수대국민학교)의 불우학생들의 급식비를 대신 내왔다. 위 질환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남편이 큰 수술 끝에 완쾌된 이후 ‘세상에 보답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가 동인(動因)이 됐다. “지인이 당시 흑석초 영양사였는데 급식비를 못 내는 아이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자리에서 학교에 전화했지요. ‘매달 3명분의 급식비를 보낼 테니 지원해주시면 어떻겠냐’고.”
2000년대 이후론 4명분의 급식비를 댔다. 이렇게 전씨의 도움을 받은 학생이 80여명이다. 그는 매달 4만~19만원의 급식비를 내러 은행으로 향했다. 그 흔한 자동이체는 하지 않았다.“얼굴도 모르지만 학생들이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을 떠올리고 다시 열심히 기부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일상이 기쁨이라 자동이체는 안 했어요.”
하지만 후원금을 마련하는 게 늘 쉽진 않았다. 영양사, 시간강사 등으로 자리를 옮긴 탓에 수입이 매우 적거나 일정치 않은 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홀트아동복지회 등 다른 단체 등에 내는 후원금까지 수익의 30~40%를 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선행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달 서울지역 초등 전학년에 무상급식이 실시되며 그의 선행은 올 10월을 마지막으로 의도치 않게 끝을 맺게 됐다. 감격에 눈물이 났다는 전씨는 “못 먹는 아이들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전면 무상급식이 실시된다고 하니 꿈이 이뤄진 것 같은 기분도 들더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불우 청소년들을 도울 계획이다. 혹시 기회가 올지 몰라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놓고 최근 사회복지사자격증도 취득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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