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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제작 시기·장소 잘못 알려져 왔다" 불교서지학자 박상국씨 특강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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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제작 시기·장소 잘못 알려져 왔다" 불교서지학자 박상국씨 특강서 주장

입력
2011.12.0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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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고려대장경 1000년의 해다. 고려는 1011년(현종 2년) 초조대장경 판각을 시작했다. 초조대장경이 1232년 몽골 침입으로 불에 타버리자 다시 만든 것이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은 착수한 지 77년 만인 1087년 완성됐고, 팔만대장경은 강화도 선원사에 설치한 대장도감에서 1236~1251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초조대장경은 현종(재위 1010~1031) 때 완성됐으며, 재조대장경은 강화도가 아닌 경남 남해에서 1237~1248년 판각됐다."

불교서지학자 박상국씨(한국문화유산연구원 원장)가 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하는 특강의 요지다. 그의 주장이 맞다면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

그는 초조대장경 완성 시기를 1087년(선종 4년)으로 보는 기존 학설은 <고려사> 기록을 잘못 해석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고려사> 는 그 해 왕이 개국사, 흥왕사, 귀법사에서 대장경 조성을 축하하는 행사를 했다고 전하는데, 이는 대장경 봉안식과 판전 낙성식을 서술한 것으로 봐야 하며 따라서 판각은 진작에 마쳤다는 것이다. 그는 "현종이 5,000권의 비장(秘藏)을 새긴 데 이어 문종이 10만송의 계경(契經)을 새겼다"는 대각국사 의천의 문집 기록 등으로 볼 때 초조대장경은 현종 때 완성됐으며 판각은 10년이 안 걸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원문을 일일이 대조해가며 판각한 재조대장경도 16년밖에 안 걸렸는데, 송나라 개보칙대장경을 거의 그대로 베껴 새긴 초조대장경이 77년이나 걸렸다는 것은 고려의 목판인쇄술이 세계 최고였음을 감안할 때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팔만대장경 제작 시기가 잘못 알려졌다는 것은 경판의 각 권 끝에 새겨진 간기(언제 어디서 간행했다는 기록)와 <고려사> 기록을 검토해서 내린 결론이다. 그에 따르면 팔만대장경은 준비기간 4년(1233~1236년)을 거쳐 1237~1248년 12년 동안 판각됐다.

강화도 선원사 제작설은"조선 태조가 선원사에서 옮겨온 대장경을 보러 용산강에 행차했다"는 <조선왕조실록> 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박 원장은 "선원사는 1245년 창건됐고 이때는 팔만대장경 판각이 90% 이상 끝난 시점이라 제작 장소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박 원장은 "그동안 팔만대장경은 강화도 대장도감과 지방에 설치한 분사대장도감에서 제작했다고 알려졌으나, 대장도감 판본과 분사대장도감 판본을 대조해 본 결과 두 곳 모두 경남 남해에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남해는 고려 무신정권 최고 실력자인 최이의 처남 정안이 머물던 곳으로, <고려사> 는 정안이 나라에 사재를 바쳐 대장경의 절반 정도를 여기서 판각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는 "강화도는 당시 정부가 국민을 버리고 피란간 곳이기 때문에 대장경을 만들 형편이 아니었던 반면, 남해는 전란을 벗어난 섬인 데다 정권 실세의 근거지여서 제작비 조달도 쉬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려대장경 1000년의 해를 요란한 기념행사로만 보낼 게 아니라 고려대장경의 진실을 밝히는 데 힘써야 한다"는 말로 결론을 대신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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