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한국인의 정치적 욕구가 다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16년 간 치러진 총선, 대선에서 유권자의 투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구사회학적 변수는 소득이나 학력이 아니라 여전히 출신 지역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갑윤 서강대 정치외과학과 교수는 6일 출간된 <한국인의 투표 행태> (후마니타스 발행)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 1992~2008년 각각 4차례 치러진 대선, 총선 자료와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 "1990년대 말 이후 정당과 후보자 지지를 결정하는 인구사회학적 변수 중 출신 지역 영향력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이 연령"이라고 밝혔다. 한국인의>
이 교수는 이 책에서 투표 결정 요인을 ▦인구사회학적 변수 ▦이념ㆍ정당 귀속감 등을 포함한 정치적 방향성 ▦업적 평가 등의 정치적 태도 ▦후보자와 이슈에 대한 평가 등 4단계로 나누어 분석했다.
인구사회학적 변수에서 소득이나 학력, 직업 같은 계층 변수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데 비해 지역 변수는 2004년 총선을 제외하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호남의 지역 변수가 가장 크고 영남 지역 변수도 비교적 영향력이 큰 반면, 충청 지역 변수는 매우 제한된 영향만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특히 "지역 투표는 영남인, 호남인은 물론 수도권과 충청인들조차 호남인을 좋아하느냐, 영남인을 좋아하느냐는 지역민 호감도가 좌우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변수 다음으로 영향이 큰 연령의 경우 분단과 전쟁,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 등 급격한 변화 속에서 세대별 사회화 경험이 크게 다르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차이가 민주화 이전에는 민주 대 반민주, 민주화 이후에는 진보 대 보수의 균열 구조를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서구에서는 보편적인 계급 투표가 한국에선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지역 투표 역시 서구 일부 국가에서는 인종, 문화, 산업구조, 종교 등 지역별 특징 때문에 나타나는 반면, 한국은 이런 균열 구조가 없는데도 지역 투표가 나타난다.
정치적 방향성에서 투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정당 지지와 여야 성향 같은 당파적 변수이고, 이념 성향도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됐다. 2000년 이후 등장한 이념 투표의 경우 서구에서는 다양한 정치사회적 이슈가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한국의 경우 한미 관계나 대북 지원 같은 외교안보 정책 이슈의 영향이 결정적이다.
현 정권에 대한 평가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대선과 총선에 따라 달리 나타났다. 대선에서는 대통령 직무평가가 후보자 지지에 미친 영향이 없거나 제한된 반면, 총선에서는 조사 대상이 된 모든 선거에서 대통령 직무평가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는 총선이 현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라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후보자와 이슈에 대한 평가는 민주화 이후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고, 총선보다는 대선에서 이 같은 성향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2000년대 들어 세대 투표, 이념 투표, 경제 투표 등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투표의 영향력은 별로 감소하지 않았다"며 "이는 지역민과 정당 간에 선거 연합이 형성되어 지역 정당제와 지역 투표가 서로를 강화시키며 존속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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