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법사의 거인 올리버 웬델 홈즈(1841~1935) 판사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헌법적 권리를 다룬 기념비적 판결에서 격언과 같은 말을 여럿 남겼다. 대표적으로, 국가안보 등 구체적 법익을 해칠‘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 있는 경우에만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명언은 지금도 흔히 인용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의 명언을 준거로 삼은 첫 대법원 판결에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1919년 미국사회당 대표는 1차 대전 징집법령에 저항할 것을 선동, 하급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됐다. 상고심 주심을 맡은 홈즈 판사는 대법관 전원 일치 판결문에서“헌법은 극장에서 거짓으로‘불이야’라고 외쳐 패닉을 초래한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전시(戰時)와 같은 구체적 상황에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는 논리였다.
‘위대한 반대자’홈즈 판사의 경고
그 이듬해, 홈즈 판사는 반전(反戰) 유인물로 폭동을 선동한 인물에게 20
년 형을 선고한 대법원 판결에서 7대2 소수의견 쪽에 섰다. 다수의견은‘명
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은 구체적 상황에 관계없이 법에 저촉되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홈즈 판사는 정치적 반대, 반체제 언사는 국가의 전쟁 노력을 방해하는 현실적 위험이 없다고 주장했다. 행위가 아닌 의견을 처벌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그렇게‘위대한 소수파 반대자(The great dissenter)’로 우뚝 섰다.
법률가들에게 익숙한 얘기를 길게 한 것은 한미FTA를 비판하는 판사들이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때문이다. 페이스북에“대통령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었다”고 쓴 부장판사의 글이 말썽이 되자 “판사도 사적 공간에서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변론이 먼저 들렸다.
판사들이 방송에까지 나와 소신을 피력하는 상황에 이르러‘사적 공간’주
장은 슬며시 사라졌다. 대신“직무상 정치적 중립의무와 시민으로서 표현의
자유는 별개”라는 항변이 커졌다. 페이스북이든 뭐든 사적 공간에서 속삭
인 말이라면, 떠들썩한 논란이 될 리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기 때문일 것
이다. 지난 칼럼에 소개한 영국 법원 판결은 “페이스북의 공적
공간에서 폭동을 선동한 글은 실제 영향에 관계없이 유죄”라고 판시했다.
법관의 정치적 중립의무와 표현의 자유를 분별하는 것은 까다롭다. 교육
학술 또는 정확한 보도를 위한 경우를 제외한 공개 논평이나 의견 표명을
금지한 법관윤리강령도‘구체적 사건에 관하여’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한
미FTA는 사법적으로 아직 구체적 사건이 아닌 만큼 금지대상이라고 하기 어
렵다. 그러니 “사법주권을 넘겨준 FTA 관련조항 재협상을 대법원 TF팀이
연구하자“는 판사들의‘청원’을 충정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국회 비준까지 마친 한미FTA가 어떤 논리에서든 헌법 원리에 어긋
나더라도, 실제 위헌성에 관한 사법심사는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서 다룰 일
이다. 법원은 위헌심사를 제청할 수 있고, 심사권은 오로지 헌법재판소가
행사한다. 이런 헌법질서를 좇는다면, 적법절차를 거친 법률과 조약의 위헌
성을 법원이 지레 시비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어긋난다. 국회 비준의‘날치
기’여부도 법원이 먼저 떠들 게 아니다.
‘사법적 자제’당위성 되새길 때
이런 사리에 비춰보면, 판사들의 집단적 비판은 선의로 납득하기 어렵다.
을사늑약을 들먹인 정치인을 본 따“나라를 팔아 먹었다”고 떠드는 것은
법관의 어법으로는 천박하고 유치하다. FTA 체결 때는 그걸 몰랐다는 어설
픈 주장은 더욱 그렇다. 뒤늦게 얼마나 깊이 연구했는지 모르나, 극장에서
무작정‘불이야’라고 외치는 것과 닮은 인상이다.
홈즈 판사는“법원은 개인의 신념이나 철학에 따라 헌법을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특히 국가간 조약과 관련, 행정부와 의회의 권한과 판단을 존중하는‘사법적 자제’를 강조했다. 한 세기 전‘위대한 반대자’와 양승태 대법원장의 충고는 다르지 않다.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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