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6ㆍ미국)가 부활했다.
5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우전드 오크스의 셔우드 골프장(파72ㆍ7,027야드)에서 열린 셰브론 월드챌린지 골프대회(총상금 500만달러). 2년 만에 우승 기회를 맞은 타이거 우즈의 표정은 진지했다. 우승을 다투던 잭 존슨(35ㆍ미국)과는 눈빛조차 마주치지 않을 만큼 비장했다.
극적인 18번 홀 버디 퍼트를 잡아낸 우즈는 4라운드에서 3타를 줄여 합계 10언더파 278타를 적어내며 2007년 마스터스 챔피언 존슨을 1타 차로 따돌렸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준우승에 그쳤던 우즈는 이로써 1999년 시작된 이 대회에서 다섯 번째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자신이 주최한 이벤트 대회였지만 2009년 11월 호주 마스터스 우승 이후 무려 749일 만이자 26개 대회 출전 만의 눈물겨운 부활이었다. 우즈는 "기분이 정말 좋다. 이겼다는 생각에 함성이 절로 나왔다. 버디 2개를 연속으로 잡아낸 것도 최고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명불허전 '한 방'의 명수로 돌아오다
동타로 맞은 운명의 18번홀(파4ㆍ444야드). 17번 홀에서 버디를 잡은 우즈가 먼저 티 박스에 올라섰다. 그는 아이언으로 안전한 공략을 시도했고, 티샷은 의도대로 페어웨이 한복판에 떨어졌다. 드라이버를 잡은 존슨의 공은 우즈보다 10야드 정도 뒤에 보내졌다. 존슨이 먼저 핀 3m 남짓 거리에 붙였다. 그러나 우즈는 158야드를 남기고 친 두 번째 샷을 불과 홀 2m 거리에 안착시켰다. 이어 존슨의 버디 퍼트가 홀을 살짝 지나치자 갤러리의 시선은 우즈의 퍼팅에 쏠렸다. 침착하게 그린을 살핀 우즈는 깔끔하게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고, 오래 기다렸던 '황제'의 포효가 골프장에 울려 퍼졌다. 2년 만의 우승이라는 의미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한방을 터뜨리는 전성기의 모습을 다시 보여줬다는 점에서 부활 가능성을 예고했다.
우승 상금(120만달러) 전액을 자신이 운영하는 타이거 우즈 재단에 기부한 우즈는 "17번홀에서 버디를 못 잡으면 18번홀에서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18번보다 17번이 더 중요한 홀이었다"고 말했다.
악몽의 터널을 뚫고
10년 넘게 세계 정상을 지키던 우즈의 골프 인생은 2년 전부터 나락으로 떨어졌다. 2009년 11월 집 근처에서 일으킨 의문의 교통사고 이후 아내와의 불화설로 촉발된 불륜 스캔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우즈는 결국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석고대죄'했지만, 가족은 물론 언론도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최다승(17승) 기록을 갈아치우더라도 그와 비교할 수 없다는 혹평도 쏟아졌다. 결국 아내 엘린 노르데 그렌과 이혼했고, 자녀 양육권까지 뺏겼다.
심각한 후유증 탓인지 우즈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대회 출전 때마다 우승권을 맴돌던 그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믿었던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뉴질랜드)도 우즈에게 '흑인 얼간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뒤 그의 곁을 떠났다. 연간 수 천만 달러의 광고 후원을 해주던 스폰서들도 대부분 떨어져 나갔다. 모든 것을 잃고 2년의 세월을 보낸 우즈는 지난 10월 호주 원정길에서 처음으로 3위를 차지하며 회복 조짐을 보였다. 이어 프레지던츠컵에서 막판에 승점을 추가하며 미국팀 우승에 기여했다. 그로부터 2주 후 마침내 우승컵을 안으며 2년간의 악몽에서 탈출했다.
우즈 부활로 '신구 황제' 대결 볼만해진 PGA
지난 10월 15년 만에 52위까지 떨어졌던 우즈는 이번 우승으로 21위로 뛰어오를 전망이다. 우즈는 휴식을 취한 뒤 다음달 26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개막하는 유럽프로골프 투어 대회인 HSBC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우즈는 경기 후 "나도 퓨릭처럼 다음 시즌을 보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07년 7월 캐나다오픈 이후 우승이 없던 짐 퓨릭이 2009년 셰브론 대회에서 2년 4개월 만에 우승을 맛본 후 지난해 정상급으로 도약한 사실을 빗댄 각오였다. 우즈가 이번 대회를 계기로 예전의 기량을 회복한다면 내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판도는 더욱 흥미진진해질 전망이다. 신예 로리 매킬로이(22ㆍ아일랜드)와 세계랭킹 1위 루크 도날드(34ㆍ영국), 그리고 리 웨스트우드(38ㆍ영국)가 우즈와 벌일 '신구 황제'대결이 볼 만해졌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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