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의 3분의2는 얼마일까. 135.3333…이다. 만약 재적의원이 203명이고 개헌정족수가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이라면 최소 몇 명이 찬성해야 개헌이 될까. 136명 이상이 돼야 한다. 135명일 경우에는 0.33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0.5이상은 1로 올리고 그 이하는 버리는 사사오입(四捨五入) 공식을 대입, 0.33은 0이 된다는 논리로 개헌정족수를 135명으로 하면 어떨까. 아마도 산수 공부를 다시 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1954년 9월27일 대한민국에서 이런 논리로 개헌안이 통과된 적이 있다.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이다.
■ 1954년 5월20일 민의원 선거에서 집권당인 자유당은 203석 중 114석을 차지했지만 목표였던 개헌정족수 136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자유당은 무소속 의원을 포섭, 136명의 서명으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중임제한 철폐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9월8일 국회에 제출했다. 엄청난 논란 끝에 11월27일 표결이 이루어져 참석의원 202명 중 찬성은 개헌정족수에서 1명이 모자라는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자유당 소속 최순주 국회부의장은 부결을 선포했으나 이틀 뒤 사사오입 논리를 내세워 가결을 선포했다.
■ 개헌안 서명자가 136명이었으나 찬성이 135명이 된 이유는 글자를 모르는 자유당 의원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각형이 있는 쪽에 투표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기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보니 '가(可)', '부(否)' 모두에 사각형이 있어 양쪽에 도장을 찍어 무효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자유당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대한수학회장인 최윤식 교수까지 내세워 사사오입 개헌을 강행했다. 이 같은 위헌적 개헌으로 1956년 대선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다시 당선돼 장기집권의 길을 갔으나, 그게 훗날 4ㆍ19의거로 쫓겨나는 비극의 시발이었다.
■ 사사오입 개헌은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잔머리 정치의 극치였다. 얕은 꾀로 세상을 농락한 자유당은 1960년 3월15일 정ㆍ부통령 선거에서 4할 사전투표,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투표, 완장부대 활용, 야당참관인 축출 등 온갖 부정을 저질렀다. 사사오입 개헌을 장황하게 거론한 것은 한나라당 의원의 수행비서가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을 주도한 사건 때문이다. 이런 잔머리 부정을 대충 넘기면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듯 큰 선거부정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 수사당국도 잔머리 굴리지 말고 배후를 철저히 수사, 엄중 처벌해야 할 일이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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