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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사진 '상처 난 거리' 막바지 작업 김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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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사진 '상처 난 거리' 막바지 작업 김중만

입력
2011.12.0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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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난 동양의 사진가일 뿐. 내 나이 곧 환갑이라 시간이 많지 않아요. 사진은 육체노동이거든. 세상에 나와 한번은 싸워보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4년 전부터 진짜 내 사진을 찍기로 한 거지."

2007년 11월 어느 날, 연수입 17억원의 '잘 나가던' 사진작가 김중만(57)씨는 상업사진 촬영 중단을 선언하고 온몸에 문신을 새겼다. 가슴팍에는 추사 김정희체의 '靈魂(영혼)'이란 글자가 들어갔다. 50대 중반에 온 몸에 문신을 새긴 이유는 이 날의 결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날 이후 사진작업을 '전쟁'처럼 치러내고 있는 그를 1일 만났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레게 머리까지 짧게 잘라서일까. 유독 전사 같은 눈빛이 선명하다. 패션, 영화 사진을 중단한 후 그의 렌즈가 향한 곳은 중랑천 둑방길. 서울 강북에 자리한 집에서 강남 청담동 스튜디오를 매일 같이 오가면서 목격한 부러진 수양버들이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8년 전 처음으로 그 나무에 '널 찍어도 되겠니?'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 대답을 2008년 봄에야 들은 거지. 그 나무를 찍다 보니 옆에 있는 나무까지 말을 걸어오는 거야." 대형 트럭이 오가고 먼지와 냄새가 뒤섞인, 돌봐줄 이 하나 없는 중랑천 길의 잊혀진 나무를 지금까지 4만 장 이상 촬영했다. 올해로 네 번째 겨울을 맞는 그곳에서 '함박눈 내리는 풍경'을 찍으면 '상처 난 거리'(Street of breaking heart) 시리즈가 완성된다.

"올해 몇 마리의 새가 태어났는지 알 정도로 그곳에 살았어. 외로이 선 나무들이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 같기도 했고, 내 인생의 굴곡과 마음 깊숙한 어둠과 슬픔과도 같았지만 버리고 싶지 않았죠."

1960년대 말 가족을 이끌고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로 이주해 평생을 진료에 바친 의사 아버지는 어쩌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결정적 인물이다. 한국전쟁 막바지, 전장의 아들을 사지에서 빼내려고 너도나도 집문서, 땅문서 들고 군의관 앞에 줄 서던 시절에 군의관 아버지는 늘 빈 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에게 작가의 전기를 마련해 준 아프리카 사진도 '아프리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찍기 시작한 것이다.

'상처 난 거리'는 아프리카 사진에 이은 소재의 전환인 동시에 기법의 전환이다. 한지에 인화해 한 장의 수묵화로 영근 사진을 두고 그는 "비로소 세계에 내가 한국 작가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한 강연 연단에 나란히 섰던 뉴욕현대미술관(MoMA) 글렌 로리 관장에게서는 '작업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겠다'는 전시 환영의 서신까지 받아 놨다. '상처 난 거리'는 그보다 먼저 내년 초쯤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사 타셴에서 책으로 나온다.

"사회비판적이거나 인류애적인 거창한 메시지는 없어요. 내 사진은 단지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죠. 난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보이고픈 소망은 있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지만 한참 들여다봐야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 그걸 찾으려고 시간이 걸려도 붙들고 가는 거지."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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