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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완충용액이 필요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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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완충용액이 필요한 사회

입력
2011.12.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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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화학 과목을 기억해 보면 산과 염기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액체 속에 녹아있는 수소 이온 농도의 양으로 산과 염기가 결정된다. 쉽게 말하면, 산성은 수소 이온 농도가 높아서 시큼한 맛을 내게 하는 것이고 염기는 수소 이온 농도가 낮아서 비누와 같이 미끈거리는 액체라 생각하면 된다. 이 둘은 매우 상극의 물질이면서도 서로 섞이면 중성으로 변화한다. 사람의 몸 안에서 각 기관의 산성도는 크게 차이가 나지만, 하나의 기관 안에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산성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완충용액 (buffer solution) 때문이다. 완충용액은 마치 자동차 에어백이나 스펀지처럼 수소 이온을 흡수 방출 하면서 산성도의 급격한 변화 속도를 늦추어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산과 염기처럼 매우 다른 성질의 조직들이나 주장들이 상존하고 있다. 예를 들면, 보수와 진보, 성장과 분배, 보존과 개발, 개방과 폐쇄, 변화와 수성 등의 주제는 사회 내에서 대립할 수 있는 주장들이다. 인류 역사의 과정이나 선진국들의 예를 보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 극단을 잘 흡수해서 조화를 이루는 사회는 크게 발전한 반면 양 극단을 급격히 오가는 국가나 정체는 퇴보하거나 멸망하기 까지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한미 FTA문제를 비롯한 대외적인 문제 뿐 아니라, 교육 개혁, 부의 극심한 불균등화, 청년실업, 복지 문제 등 매우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극단적인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변혁기에 사회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 '사회적 완충용액' 인데,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종교 단체, 교수를 비롯한 관련 전문가, 공정한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기관, 기업의 이익에서 자유로운 NGO 등을 들 수 있다. 서로 이념적 지향이 뚜렷이 다른 정당들 혹은 자본가나 노동조합은 상호간에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종교, 학계, 언론, NGO 등은 개개 집단의 단기적 이익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며, 사회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기도 하고, 법이나 돈이 미치지 못하는 곳의 어려운 문제들을 대신 해결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많은 갈등들의 원인을 찾아보면 소수의 극단적인 강산성 혹은 강염기성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완충할 수 있는 종교, 학계, 언론, NGO들이 부재하거나 존재하나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종교 단체들은 국민들에게 정서적 위안을 주거나 국가가 보살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대신, 매우 직접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거나 자기 돈벌이에 급급해하고 있다. 대학에서도 자신의 전공 분야의 연구를 통한 사회 기여 보다는 어떻게든 권력층에 끼어들려고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교수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서로 관점이 다른 신문의 기사를 읽어보면 도대체 한 나라 안의 이야기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강한 산성과 염기성을 그냥 섞어주면 둘이 중화되어 중성을 띄게 된다. 그러나 완충용액 없이 진행되는 중화 과정에서는 유독한 기체가 발생하거나 끓어 넘치면서 폭발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만일 우리 사회에 충분한 완충용액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충돌과 혼란이 일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종교인, 지식인, 언론인, NGO 들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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