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주간 타임이 최근 발간한 '되돌아본 한해' 2011년 특별판에는 소말리아 기근 외에 후진국발 재해 뉴스가 없다. 국제구호기관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뉴스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구호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 위주라는 고질병은 여전하다.
폐해 많은 공급자 위주 구호
받는 사람이 원치 않는 물건을 기부하는 것을 스위도(SWEDOW)라고 부른다. 한 구호 봉사자가 운영하는 블로그는 매년 스위도상을 선정해 발표하는데 2011년에는 모유, 유기농 유아식, 테드베어와 인형, 사용하던 베개와 운동화 등을 기부하는 비정부기구(NGO)들을 선정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3개월 만인 2002년 1월 파이의 일종인 팝 타르트 240만개를 공중 투하한 것도 대표적인 스위도 리스트에 올라 있다. 물론 이런 구호품도 주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식량 지원의 폐해는,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지원이 본격화한 아이티의 쌀 자급률이 15%로 낮아진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아이티 강진 피해 이후 특사로 활동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과거 내가 한 일 때문에 아이티가 식량 생산 능력을 상실했고, 매일 그로 인해 생긴 문제들을 다뤄야 했다"고 토로했다.
외신 사진에서 고급 스포츠 의류를 입은 빈민국 주민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스위도와 관련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잠비아와 니카라과 주민들이 미 프로풋볼리그(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에서 피츠버그 스틸러스가 승리했다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올해 슈퍼볼의 승자는 스틸러스를 누른 그린베이 패커스였다. 티셔츠를 사전 제작한 NFL이 패배 팀 옷 10만벌을 판매할 수 없게 되자 월드비전에 기부한 것이 잠비아와 니카라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NFL은 기부로 세금 혜택을 받고 월드비전은 셔츠당 58센트(약 143원)를 들여 가난한 사람을 도왔으니 서로 나쁠 게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의류를 지원받은 아프리카에선 1981년부터 2000년 사이에 의류산업 종사자가 절반으로 감소했다. 원조가 피원조국 경제를 파괴한다는 종속이론을 스위도가 입증하는 것이다.
사실 스위도를 피할 정답은 이미 공개돼 있다. 그 나라 물건을 구매해 지원하면 탈이 없다. 매년 20억달러 이상을 식량지원에 쓰는 미국이 자국산이 아닌 피원조국 현지에서 식량을 구매하면 25%까지 저렴한 가격으로 신속하게 지원할 수가 있다.
정치 연장선에 있는 국제 원조
세밑 분위기까지 탄 지난달 30일 부산에서 열린 세계개발원조총회는 올바른 기부 방법을 찾을 기회로 기대됐다. 세계 빈곤 인구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이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됐지만 이번 회의의 성패를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국제원조 역시 정치의 연장선에 있다는 한계가 다시 입증됐다. 일례로 세계 빈곤문제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서방 주도 원조 체제에 저항하며 자원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 원조에서 큰 손으로 등장한 중국에게 국제 사회의 틀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재임 시절 테러와의 전쟁에서 한 축을 담당한 그가 바뀐 영역에서 동일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태규 워싱턴 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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