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읽는 옛집/함성호 지음/열림원 발행ㆍ332쪽ㆍ1만5,000원
건축을 전공한 시인이 조선 유학자들의 집에 대해 쓴 책이다. 지은이는 시력 21년의 작가이며 시업을 시작한 이듬해 건축평론으로 등단한 평론가이고 설계사무소를 운영 중인 건축가다. 세 방면의 내공이 눅신하게 녹아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어렵게 자료를 조사해 대상을 선정하고 나니 이번에는 그들의 학문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했다… 주자의 <논어집주> 를 탐독하기를 3년, 게으른 선비가 책장만 넘긴다고 했던가…" 집의 주인들이 정주지학의 리(理)와 기(氣)를 자재 삼아 조선의 이데아를 건설하는 맥을 짚기 위해, 지은이는 긴 시간 책상머리를 지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논어집주>
책이 실한 까닭이지만 답사기 형식의 에세이로 읽기엔 책장이 무겁게 넘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 중기 이후 성리학과 실학의 논변들이 뻗어나간 지형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으면 읽어내기 힘들 수 있다. 대중 교양서로서 아쉬운 점이다.
예컨대 도산서당을 "철학의 정원"으로 해석하는 이런 부분. "리가 기를 낳고 리 자체에 체(體)와 용(用)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조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이었다… 도산서당은 그런 의미에서 동양철학의 정원이라 불릴 만하다… 얼핏 전형적 배산임수의 형상이지만 강안의 절벽 위에 자리해서 그 풍경이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 리의 체로서 용의 형상을 바라보는 퇴계 철학의 상징적인 좌향이 아닐 수 없다."(121~122쪽)
이처럼 <주자대전> 이나 <태극도설> 의 생살이 무두질 없이 노출되는 게 벽이라고 느껴진다면, 슬쩍 건너 뛰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만 추려서 봐도 된다. 그렇게 해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회재 이언적의 숨결이 묻은 독락당에서 사대부의 정치적 부침과 학문적 신경전을 읽어내는 '시로 지어진 건축' 장을 예로 들어 보자. 태극도설> 주자대전>
불교의 형이상학 체계를 배척하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성리학의 태생적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는, 머리 아프면 건너 뛰면 그만이다. 그 앞과 뒷부분은 부드럽고 차진 옛이야기다. 뒷배를 봐주던 외숙이 죽은 뒤 중앙정계에서 밀려난 회재의 울분, 10년 연하의 남명 조식과의 자존심 싸움이 흥미롭다. 지은이는 옛집의 터와 생김새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길어내 들려준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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