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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철학으로 읽는 옛집' 조선 선비들의 혼이 담긴 집과 터를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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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철학으로 읽는 옛집' 조선 선비들의 혼이 담긴 집과 터를 논하다

입력
2011.12.0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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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옛집/함성호 지음/열림원 발행ㆍ332쪽ㆍ1만5,000원

건축을 전공한 시인이 조선 유학자들의 집에 대해 쓴 책이다. 지은이는 시력 21년의 작가이며 시업을 시작한 이듬해 건축평론으로 등단한 평론가이고 설계사무소를 운영 중인 건축가다. 세 방면의 내공이 눅신하게 녹아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어렵게 자료를 조사해 대상을 선정하고 나니 이번에는 그들의 학문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했다… 주자의 <논어집주> 를 탐독하기를 3년, 게으른 선비가 책장만 넘긴다고 했던가…" 집의 주인들이 정주지학의 리(理)와 기(氣)를 자재 삼아 조선의 이데아를 건설하는 맥을 짚기 위해, 지은이는 긴 시간 책상머리를 지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책이 실한 까닭이지만 답사기 형식의 에세이로 읽기엔 책장이 무겁게 넘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 중기 이후 성리학과 실학의 논변들이 뻗어나간 지형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으면 읽어내기 힘들 수 있다. 대중 교양서로서 아쉬운 점이다.

예컨대 도산서당을 "철학의 정원"으로 해석하는 이런 부분. "리가 기를 낳고 리 자체에 체(體)와 용(用)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조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이었다… 도산서당은 그런 의미에서 동양철학의 정원이라 불릴 만하다… 얼핏 전형적 배산임수의 형상이지만 강안의 절벽 위에 자리해서 그 풍경이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 리의 체로서 용의 형상을 바라보는 퇴계 철학의 상징적인 좌향이 아닐 수 없다."(121~122쪽)

이처럼 <주자대전> 이나 <태극도설> 의 생살이 무두질 없이 노출되는 게 벽이라고 느껴진다면, 슬쩍 건너 뛰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만 추려서 봐도 된다. 그렇게 해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회재 이언적의 숨결이 묻은 독락당에서 사대부의 정치적 부침과 학문적 신경전을 읽어내는 '시로 지어진 건축' 장을 예로 들어 보자.

불교의 형이상학 체계를 배척하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성리학의 태생적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는, 머리 아프면 건너 뛰면 그만이다. 그 앞과 뒷부분은 부드럽고 차진 옛이야기다. 뒷배를 봐주던 외숙이 죽은 뒤 중앙정계에서 밀려난 회재의 울분, 10년 연하의 남명 조식과의 자존심 싸움이 흥미롭다. 지은이는 옛집의 터와 생김새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길어내 들려준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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