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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입시, 단순하면 안되나

입력
2011.12.0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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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연말 모임이 많아지는 12월에는 유의할 점이 있다. 아무리 친한 친구들 모임이라도 고3 수험생 자녀를 둔 이가 있다면 입시결과를 묻지 않는 것이다. 그 때문에 종종 어색한 장면이 연출된다. 자녀가 합격한 친구는 기뻐도 낙방한 자녀를 둔 친구가 있을까 봐 내색하지 못한다. 설령 입시에 실패한 자녀를 둔 친구가 툭 속내를 드러내도 얼른 화제를 돌리는 것은 귀갓길 그의 마음이 쓰릴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입시제도 등 교육문제는 해마다 연말 모임의 단골 메뉴다. 학부모로서 얼마나 시달리고 마음을 졸였으면 그럴까 싶을 정도로 교육문제만 나오면 모두들 목 핏줄을 굵게 세운다. "입시가 왜 이리 어렵고 복잡해야 하느냐""교육제도가 아이 잡는다""이러다 제 명대로 못살겠다""아이들이 불쌍하다" "이민가고 싶다"고 탄식한다.

대입 전형만 3000개 넘는 나라

우리나라처럼 복잡한 입시제도를 운영하는 나라가 있을까. 수시ㆍ입학사정관ㆍ일반ㆍ정시 모집은 물론 대학 별로 따지면 3,200가지가 넘는 전형 방법이 있다. 어렵고 복잡한 전형을 이해하려고 학부모들은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밑줄을 긋고 머리를 싸매야 한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시간당 수십 만원을 호가하는 입시컨설팅 업체를 찾는다. 입시일이 닥치면 비싼 전형료 지출을 감수하고라도 이 대학 저 대학으로 아이들을 실어 나른다.

수험생들도 괴롭다. 수능에 내신에 논술까지 대비하느라 심야와 휴일을 가리지 않고 학원을 다닌다. 대학별 전형에 대비하려면 고난도 학습도 병행해야 한다. 논술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이론이나 학설이 튀어나오고, 박사 과정 학생도 고개를 흔들 만큼 난해한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이다.

한 번 입시에 실패하면 반수ㆍ재수는 물론 삼수까지도 각오하는 게 요즘 말로 '대세'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입 전선에 투입된다. 방학을 앞둔 요즘 영어ㆍ수학ㆍ독서 학원은 이른바 '레벨 테스트'로 불리는 입학시험을 치르는 초등학생들로 북적인다. 유명 학원 입학을 도와주는 학원까지 있단다. 혀가 절로 끌끌 차진다.

고3 수험생 학부모들은 상당수가 베이비붐 세대다. 얼마 전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 4가구 중 1가구만이 현재 자산으로 노후 생활이 가능하다. 퇴직 시기는 성큼성큼 다가오는데 퇴직 이후 준비는 안 돼 있고 노후도 불안하다. 그래도 아이들 교육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 있는 자산 없는 자산 까먹어가며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내는 게 현실이다. 복잡한 입시제도 아래서 사교육은,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그나마 자녀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나 불안을 덜어주고 합격에 대한 기대치도 올려주는 유일한 방도다. 그렇기에 학부모들은 10년, 20년 뒤야 어찌 되든 일단 자신의 노후를 담보 삼아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이것을 베이비붐 세대의 숙명이라고 한다면 너무 가혹하다. 베이비붐 세대가 경험한 입시제도는 단순했다. 그것이 학교를 입시학원으로 전락시키고 부모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사교육을 횡행하게 한다 해서 수십 차례 뜯어고친 것이 지금의 입시제도다. 하지만 공교육 정상화는 여전히 요원하고, 고차원 방정식이 된 입시제도는 사교육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대학은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아우성은 아랑곳없이 정책의 허점을 파고들면서 편법ㆍ변칙 입학전형을 고안ㆍ운영하며 사교육 시장이 키운 상위권 수험생을 선점하려 혈안이다. 그 사이 대다수 학부모와 수험생들은 들러리로 전락해 대학의 장단에 놀아나고 있다.

언제까지 대학 장단에 놀아나나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자율과 경쟁의 교육 정책이 유효했다고 자랑만 늘어놓고 있다. 대학 자율도 좋지만 학부모와 수험생들만 일방적으로 고통을 받는 입시제도는 개선해야 마땅하다. 출발선은 대학이 아닌, 수험생 입장에서 입시를 지금보다 단순화하는 것이다. 복지 정책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황상진 편집국 부국장 겸 디지털뉴스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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