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낮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식당 '두리반'.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크고 둥근 상이란 의미처럼, 100㎡ 정도 되는 공간에 40여명이 점심시간 무렵부터 칼국수와 보쌈에 막걸리를 곁들인 '작은 잔치'를 벌였다. 두리반 주인 유채림(50), 안종녀(52)씨 부부도 환하게 웃었다. 부부는 "2년 만에 정말 맘 편히 웃어본다"고 했다. "잔치는 나흘 동안 계속 됩니다. 칼국수와 보쌈은 마음껏 공짜로 드시고 가세요. 이미 돼지 두 마리도 잡았다니까요. 허허…"
무슨 사연이 있을까. 두리반은 이날 다시 문을 열었다. 유씨 부부가 2009년 12월 26일 용역회사 직원들이 막아 놓은 식당 문 쇠사슬을 끊고 들어가 농성을 시작한 지 2년 여 만이다.
부부는 지금 가게에서 1㎞ 떨어진 동교동의 한 건물에서 2005년부터 4년 남짓 칼국수와 보쌈 등을 팔았다. 하지만 공항철도역 공사가 시작되면서 세 들어 장사하던 3층 건물은 철거위기에 놓였다. 시행사가 이들에게 지급한다고 통보한 금액은 이주비용 300만원이 전부였다. 암울했다. 법이 있어도 서민 편이 아니라는 것에 절망했다. 재개발 논리에 밀려 서서히 죽어가는 서민들의 억울함을 알리고 싶었다. 점거농성은 그렇게 시작됐다.
두리반은 2009년 1월20일 용산4구역 재개발에 반발해 농성하던 세입자 5명이 사망한 소위 '용산 참사'에 빗대 '홍대 앞 작은 용산'으로 불렸다.
농성이 시작되자 소설가였던 유씨의 지인들이 소식을 듣고 하나 둘 모였고, 자신들이 적은 글을 읽는'문학의 밤'을 열기도 했다. 인근 홍대클럽 인디밴드들도 모임에 합류해 공연을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에 알려진 두리반에는 점차 희망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고비도 적지 않았다. 농성시작 7개월째인 지난해 7월 21일 건설사가 전기를 끊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응원하며 건전지 촛불과 태양광 발전기 등 '대체제'를 속속 보내왔다. 농성과 문화공연도 중단되지 않았다. 결국 건설사는 올해 1월부터 대화로 입장을 바꿨다. 그리고 6월8일 '두리반이 홍익대 인근에 다시 문을 열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협상이 타결됐다. 농성을 시작한 지 정확히 531일 만이었다.
부부는 이달 5일 정식개업에 앞선 나흘간 잔치가 그 동안 자신들에게 힘이 된모든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고 했다. 유씨는 "당초 뮤지션 공연, 작가 낭독회, 다큐 상영공간이 함께 가능한 자리를 알아보려 했으나, 그런 점포는 권리금만 2억원이 넘었다"고 했다. 식당으로만 재개업한 것에 대한 미안함 정도로 여겨졌다. 이날 잔치엔 재개발 문제로 과거 두리반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명동 2, 4구역 세입자들도 참가해 희망을 안고 돌아갔다.
"내일은 그 동안 농성공연을 해오던 인디밴드들, 모레는 우리 문제를 다큐멘터리로 찍어 알린 다큐작가들을 잔치에 모십니다. 마지막 날은 새로 둥지 튼 이곳 주변 상인 분들도 모셔야죠."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