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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 첫 소설집 '가나'/ 위태로운 삶의 문턱에서 잃지 않는 인간적 체온 눈물 나게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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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 첫 소설집 '가나'/ 위태로운 삶의 문턱에서 잃지 않는 인간적 체온 눈물 나게 아름다워…

입력
2011.12.0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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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생 작가들이 주로 기이하고 파괴적 상상력으로 세상의 균열을 내는데 주력했다면, 80년대생 작가들은 그 벌어진 틈에서 서정과 아름다움을 보는 것일까.

81년생 신예 작가 정용준(사진)씨의 첫 소설집 <가나> (문학과지성사 발행)는 어떤 세대적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힐 것 같다. 2009년 등단 후 단편 '가나'가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이달의 소설에 선정됐고 '떠떠떠,떠'로 문학동네의 제2회 젊은작가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온 정씨는 첫 작품집을 통해 확실한 색깔을 드러냈다.

소설집은 죽음의 맨홀 구멍으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비주류 삶의 위태로움을 다루되, 그 아슬한 문턱에서도 인간적 체온을 잃지 않는다. 짧게 말하면 눈물 나게 슬프고 아름답다는 얘기다. "이토록 아름다운 죽음의 문장들을 만나게 되는 일은 쉽지 않다"(문학평론가 김형중씨)는 평처럼. 앞 세대가 세상에 돌진하는 냉소적 괴물이 되고자 했다면, 이들은 마치 괴물 같은 세상에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첫머리에 실린 단편 '떠떠떠, 떠'는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어 조롱을 받다 아예 벙어리가 돼버린 '나'가 간질에 걸린 그녀와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초등학교 같은 반이었던 나와 그녀는 동물원 알바생으로 다시 만나, 각각 사자와 판다 인형의 탈을 쓰고 관람객의 흥미를 돋우는 일을 한다. 소설 속 슬픔의 정점은 이런 상황이다. 해맑은 판다 인형을 쓴 그녀가 느닷없이 발작 증세를 보일 때 아이들은 즐거워하고, 사자의 탈을 쓴 '나'는 판다로 향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쇼를 한다. 탈 밖의 즐거움과 탈 속의 슬픔이 극명하게 대비되는데, 소설은 탈 바깥에 대한 분노보다는 탈 속 나와 그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마지막 대목, '나'가 그녀에게 기어이 말하는 '떠, 떠떠, 떠떠. 떠떠떠…'는 이미 남루해진 '사랑해'라는 말을 구원하는 언어로 들리기까지 한다.

아랍계 외국인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다룬 '가나'는 바다를 떠돌며 유령이 된 노동자를 화자로 내세워 그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소재에서 연상될 법한 삭막한 서늘함 대신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한 아름다운 서정시를 읽는 듯하다. 그 외 머리에 뿔이 나는 취업준비생의 이야기를 다룬 '어느날 갑자기 K에게' 등 모두 9편의 단편이 담겼다.

조선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정씨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가의 윤리는 좋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믿는다"며 "그 믿음대로 살 것이고 함부로 낙담하거나 글의 힘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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