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진해의 김달진 문학관에서 경주 남산 산행에 함께 가자는 초대가 있었는데 가지 못했습니다. 제 대신 제 시 한 편만 좋은 일행들 사이에 숨어 경주 남산에 다녀왔습니다.
산행에 함께한 지종삼 선배가 그 후기를 뛰어난 사진으로 남겼는데, 사진으로 남은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모두 눈에 선한 모습이어서 한 장 한 장 넘기는 사이에 어느새 제 마음이 먼저 그 길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경주 남산은 저의 30대를 고스란히 보낸 산입니다.
그 나이에 제가 무슨 마음의 주소를 알았겠습니까만, 그때 쓰기 시작한 첫 시, 첫 구절에 '마음이 길을 만드네'라는 낯부끄러운 한 줄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경주 남산을 걷는 일이 마음을 따라 걷는 길이라는 생각에는 지천명을 넘어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경주 남산은 지도를 보거나 이정표를 따라 걷는 산길이 아니라, 마음을 따라 걷는 마음의 산길입니다.
그 마음이 천 년 전 신라 사람들의 마음과 하나가 될 때, 눈을 감고도 어디든 찾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 산행에 참여한 수필가 백남오 선배가 경주 남산에 숨은 김시습의 혼을 빌어 전해준 불호령 같은 구절에 마음이 화들짝 뎁니다. '무한세월 속에 인생의 유한을 깨닫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라. 주어진 너의 삶도 그리 멀지 않았음을 명심하라.' 그 경구에 내 속으로 다시 경주 남산이 솟아오르는 날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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