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내 정숙'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 도서관이 있다. 이곳에선 떡볶이를 사다 먹어도 되고, 컴퓨터를 하며 떠들어도 괜찮다. 그래서 '와글와글 도서관'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350개 점포에서 1,000여명이 일하고, 하루에 2만 5,000명이 오가는 서울 강북구 수유시장에 있는 20평 남짓의 '수유마을 작은 도서관' 얘기다.
오는 3일이면 개관 1년을 맞는 작은 도서관은 우연한 계기로 탄생했다. 작은 도서관의 관장인 이재권씨는 12년간 수유시장에서 생선을 판 상인. 이씨는 작년 5월 자주 가던 죽집 사장에게 여러 번 책을 빌려주고 돌려 읽었는데 죽집 사장이 '차라리 도서관을 한 번 해보면 어떻겠느냐' 제안을 해 엉겁결에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씨는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먹는다' '무식한 상인들'이라는 고정관념도 깨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 번 마음을 먹으니 개관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수유시장 상인연합회에서 창고로 쓰던 2층 건물의 작은 공간을 비우고 테이블 4개와 2,500여권의 책을 들였다.
하루 평균 20여명이 찾는 이 도서관은 이제 수유시장 명소가 됐다. 주변 상인들에겐 공부방이자 쉼터이다. 처음에는 '쓸 데 없는 데 돈 쓰지 마라' '장사하면서 어떻게 책을 읽느냐'고 불평도 늘어놓던 일부 상인들도 짬을 내 도서관에 들른다. 120여명의 회원이 생겼고, 가끔 경기 일산이나 서울 청량리에서 찾아오는 고정회원도 있다.
이 관장에게 도서관 개관을 제안했던 죽집 사장 박순자(44)씨도 열성 이용객이다. 박씨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장사 도중 틈틈이 읽고, 그 감상을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며 "어제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고 10명 정도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박씨가 참여하는 '반딧불이' 독서모임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작은 도서관에서 열린다.
수유시장에서 아동복 매장을 운영하는 강창규(47)씨도 일주일에 서너 차례 도서관을 이용한다. 강씨는 "책을 읽을 때만 오는 게 아니라 피곤할 때마다 와서 잠깐 졸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한다"며 "대낮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을 못 마시니 당구장에 갔었는데 이젠 도서관에 와서 푼다"고 말했다.
1년 만에 도서관은 자리를 잡았지만 상인들로 이뤄진 8명의 운영위원들은 재정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개관 당시 정부가 400여만원을 보조했고, 강북구청도 매년 200만원씩 지원하고 있지만 도서관의 1년 예산인 2,000만원에는 훨씬 못 미친다.
이씨는 "자꾸만 누구의 후원에 기대면 오래갈 수 없을 것 같아 내년에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라며 "작은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자기 집 서재처럼 생각해 자유롭게 와서 쉬고, 주민들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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