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저축은행 유동천(71) 회장은 고객 돈으로 조성된 은행 예금을 너무도 손쉽게 빼돌렸다. 금액을 임의로 적은 쪽지만 보내면 임원들이 알아서 돈을 빼줬다. 돈은 대부분 생활비 등 개인 용도로 사용됐다. 횡령액이 한계에 이르자 고객 명의를 도용해 대출을 받아 채워넣었다. 유 회장이 이런 식으로 챙긴 돈은 158억원, 도용한 명의는 1만1,000여명에 달한다. 유 회장은 부풀려 책정한 대출수수료 일부를 빼내는 수법만으로도 96억원을 챙겼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실 저축은행 합동수사단이 30일 발표한 중간 수사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은행 돈을 개인 돈인 양 마구 빼돌려 주식투자와 부동산 구입 등에 사용했으며, 고객 명의를 불법 도용해 거액을 대출 받기까지 했다.
유 회장은 금융기관 인수, 주식투자 과정에서 1,000억원대의 부실채권이 발생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검사기간이 다가오면 차명 대출로 돌려막기를 했다. 적발 가능성이 높아지자 그는 고객 1만1,663명의 명의를 도용해 1,247억원을 빌려 채무를 없앴다. 명의가 도용된 고객에게는 별도 번호를 부여해 전산조회를 통한 대출확인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등 치밀함도 보였다.
토마토저축은행 신현규(59) 회장도 은행 돈을 개인 잇속을 챙기는 데 사용했다. 그는 차명으로 314억원을 대출 받아 경기 용인시의 최신 골프연습장을 인수한 후 골프단까지 운영했다. 2007년에는 600억원을 불법 대출받아 캄보디아의 부동산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지만 가격 폭락으로 원리금을 그대로 날렸다.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위해 41명 명의로 무려 3,700억원을 대출 받았다. 아파트 건축업을 하는 지인에게 차명으로 1,018억원을 빌려주면서, 시세가 형성되지도 않는 탱화 3점을 110억원에 담보로 잡아주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은 대출금에 대해 민사책임을 질 수도 있어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저축은행 오너들의 도덕적 해이에 편승해 고양종합터미널 시행사 대표 이모(53)씨는 특별한 담보도 없이 에이스저축은행에서 7,200억원, 제일저축은행에서 1,600억원을 투자금 명목으로 빌렸다. 그는 이 돈으로 포르쉐, 벤틀리 등 고급 외제차를 사고 피아제, 에르메스 등 고급시계와 명품가방을 사는 데 7억원을, 유흥비로 24억원을 사용했다. 서울 강남의 대형 나이트클럽을 120억원에 인수하는가 하면, 미국 부동산 매입을 위해 150억원을 투자하는 등 '황제'처럼 살았다.
검찰이 주축이 된 합동수사단은 수사 착수 이후 두 달 동안 대주주와 은행장 등 14명을 사법처리하고, 불법대출 금액이 2조1,680억원에 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검찰은 이 중 대주주와 경영진이 빼돌린 은닉재산 2,349억원을 확보해 예금보험공사에 통보했다.
검찰은 대주주 불법대출 수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앞으로는 유 회장 등 저축은행 대주주의 구명 로비 수사에 주력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불법자금의 사용처를 추적하는 데 매진하겠다"고 말해 로비 대상이 된 금융감독원과 국세청, 검찰 고위인사 등을 겨냥한 본격 수사를 예고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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