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FTA) 연구 및 사전 협의 등에 관련된 예산(기본경비)의 25% 이상이 수년째 재외공관 임차료 등 다른 용도에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FTA 협상 추진에 차질이 빚어져 예산이 부족한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는 입장이지만, 국회는 “해마다 목적 외 용도로 과다한 예산을 쓰는 것은 문제가 있는 만큼 예산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30일 국회 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세계 각국과 FTA 협상을 진행하는 FTA교섭대표(FTA정책국 및 FTA교섭국) 기본경비는 지난해 9억200만원이 책정됐으나 6억5,800만원만 원래 목적대로 사용돼 집행률이 72.3%에 그쳤다. 남은 예산 중 2억4,400만원은 재외공관 임차료, 공관장 회의 및 출장 운영비, 직원 교체 여비 등에 전용됐다.
기본경비는 운영비 여비 업무추진비 등 꼭 필요한 기본예산으로, 95~100%의 집행률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국회 관계자는 “기본경비 집행률이 90%만 되도 상당히 낮다고 평가되는데 FTA 기본경비는 이보다 훨씬 집행률이 낮았다”고 말했다. 통상교섭본부는 “지난해 한미 FTA 추가협상, 한ㆍ유럽연합(EU) FTA 서명 및 발효 등에 역량을 집중하는 바람에 다른 나라와는 FTA 협의를 계획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며 “남은 예산은 지침에 따라 다른 용도로 적법하게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예산 전용이 수년 째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에는 기본경비 7억800만원 중 5억2,400만원(집행률 74.0%)만 집행됐고, 2009년에도 10억2,000만원 중 절반 수준(56.7%)인 5억8,900만원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매년 과다하게 예산을 받아 상당부분을 다른 곳에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통상교섭본부는 “2009년의 경우 남미공동시장(MERCOSUR), 일본, 중국 등과 FTA 준비 논의를 하려 했으나 각국 내부 사정과 협의 지연 등으로 불가피하게 집행률이 낮아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추후 여건이 조성돼 상대국가와 다시 FTA 협의를 하면 예산이 또 필요해지는 만큼 다른 용도로 써버리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예산분석실의 정진욱 예산분석관은 “해마다 집행이 부진한 것은 예산 소요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없었다는 뜻”이라며 “정부가 내년에도 올해 수준(8억9,700만원)의 예산을 요구했는데, 집행률이 올해처럼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집행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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