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민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억울해 말이 안 나옵니다."
29일 오후 경기 광주시 송정동에서 만난 다가구주택 주인 김모씨는 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씨는 올해 7월 말 집중호우로 지하와 1층까지 물에 잠긴 집을 고치기 위해 8월 중순 자비 2,000여 만원을 들여 '㈜휴먼빌의 사람들'이란 업체와 계약을 했다. '시 지정업체'라고 홍보를 해 송정동 피해 가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업체에 공사를 맡겼다. 하지만 수해 뒤 네 달이 지나도록 집수리는 끝나지 않았다. 출입문과 방범창 등을 달지 않았고, 300만원짜리 옥상 공사는 시작도 안 한 상태에서 업체가 잠적했다. 업체 대표 박모(57)씨는 휴대폰을 없애 연락도 되지 않는다. 김씨는 "동네 공사를 한 업체가 도맡아 피해가 커졌는데도 시는 이제서야 상황 파악을 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올해 여름 수해를 입은 광주 송정동 주민들이 집수리 사기로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피해 주민과 자재 납품업체 등에 따르면 업체 대표 박씨가 송정동에 나타난 것은 수해 직후인 8월 초. 지대가 낮은 송정동은 올해 7월 말 경안천 지류인 송정소하천이 범람해 300여 가구가 침수됐다.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주민 2명은 사망했다.
이런 상태에서 박씨는 "피해 복구를 돕겠다"며 동네 어귀에 '집수리 봉사합니다'고 적은 현수막들을 내걸었다. 사무실 앞에는 '수해복구 시 지정업체'라는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게시해 수재민들을 상대로 영업을 벌였다. 동네 한 주민은 좋은 일을 한다며 임대가 안된 건물을 사무실로 선뜻 빌려주기도 했다. 박씨의 집수리는 봉사활동으로 포장되며 수해를 입은 300가구 중 170여 가구가 박씨에게 공사를 맡겼다. 수해 뒤 시 직원들이 동네에 상주해 피해 복구를 하고 있었던 터라 주민들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한 주민은 "사무실 임대 과정에서도 동사무소가 중재를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하지만 박씨는 27일 사무실을 폐쇄하고 야반도주했다. 서너 가구는 공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공사가 어느 정도 된 가구들도 날림 공사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한 주민에게는 얼마 전 4,000만원 규모의 리모델링 공사를 계약하고 1,000만원을 받는 등 박씨는 도주 전까지도 공사비를 챙겼다.
피해는 자재 납품업체와 동네 식당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납품업체 피해는 도배 장판 섀시 출입문 판넬 업체 등을 합쳐 2억원을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에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들과 밥값 수백 만원을 떼인 식당들까지 나타나 동네가 쑥대밭이 됐다. 5,000만원 상당의 자재를 납품한 N사 관계자는 "시가 지원하는 업체인 줄 알고 계속 대금 결제를 늦췄어도 믿었는데 황당하다"고 말했다.
민원이 쇄도하자 광주시는 발칵 뒤집어졌다. 시는 수해 뒤 수해복구에 노력한 공로로 이 업체에 시장 명의의 표창장까지 전달한 바 있다. 시 관계자는 "박씨는 타인 명의의 사업자등록증으로 활동했는데 시 지원을 사칭하고 다니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글·사진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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