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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어느 판사의‘사적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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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어느 판사의‘사적 공간’

입력
2011.11.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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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대통령과 FTA를 비판하며 "서민과 나라를 팔아 먹었다"고 욕한 현직 부장판사의 자기 변호와 정치권ㆍ언론의 변론이 자못 요란하다. "페이스북은 사적 공간"이라는 항변이 먼저 눈에 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에 견해를 밝히는 것은 사생활이라거나, 시민으로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는 주장도 들린다. SNS가 사적 공간인지, 공적 공간인지 애매모호하다며 엉거주춤한 이들도 있다. 늘 하던 수법대로 핵심을 흐리는 혐의가 짙지만, 법과 논리를 떠받드는 법관의 행위가 공적 토론과 심사의 대상이 된 만큼 차분히 살펴볼 만하다.

■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근접공간학(Proxemics)에서 창안한 개념인 사적 공간(Personal space)의 고유한 뜻은'심리적으로 자기 것으로 여기는 주위 공간'이다. 더 좁게 커플과 가족 등만 접근할 수 있는 '친밀 공간(Intimate space)'이 있고, 반대로 사적 공간을 벗어난 곳에 사회적 공간(Social space)과 공적 공간(Public space)이 있다. 이런 심리적 경계는 사회와 문화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유대교에서 개인이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지키려고 하는 사적 공간은 대략 2.5m 거리였다고 한다.

■ 페이스북 글쓰기는 판사 직무와 무관한 사적 영역(Private sphere)이란 뜻으로'사적 공간'을 들먹였을 수 있다. 철학자 하버마스 등에 따르면 사적 영역은 사회나 국가의 간섭 없이 생계와 가족을 돌보는 것을 뜻한다. 이를 벗어난 공적 영역은 '개인과 집단이 자유로이 상호 관심사와 사회 문제를 논의하고 정치적 행동에 이르는 사회적 생활'을 뜻한다. 페이스북에서 FTA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욕한 것은 사적 공간, 사적 영역과 한참 멀다. 사적 공간은 좁게는 개인 방실(房室)과 화장실, 욕실을 가리킨다.

■ 트위터와 페이스북 세상을 떠들면서 거기 올린 글의 책임은 잡다한 명분을 내세워 회피하는 것은 우습다. SNS를 통한 명예훼손을 떠올리면 헛된 논란을 줄일 수 있다. 영국 법원은 지난 여름 폭동 사태 때 페이스북에서 폭동을 선동한 이들에게 무거운 징역형을 선고했다. 명색이 법관이 엄밀한 논리 없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선동적 글을 올리고는'표현의 자유'를 논하는 것은 헌법 원리를 왜곡, 모욕하는 짓이다. 법관윤리강령을 따지기에 앞서, 정치사회 이슈에 침묵할 수 없는 판사는 미리 법복을 벗고 SNS 논객으로 나서는 게 오히려 올바른 처신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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