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견 선교사들의 희생은 신앙의 증거… 한국은 기쁨의 땅"
독일 바이에른주 주도인 뮌헨에서 서쪽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가량 달려 성 오틸리엔(Saint Ottilien) 수도원에 도착했다. 고딕양식의 수도원 건물들이 숲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냈다.
이 수도원은 기도와 노동을 병행하며 자급자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도사 100여명이 180마리의 소와 돼지를 키우고 감자와 채소를 가꾸며, 바느질과 탁자를 만드는 목공 일도 직접 한다. 몇몇은 재학생이 750명인 김나지움(중ㆍ고교)에서 교사로 일하거나 출판사에서 근무하기도 한다.
성 오틸리엔 수도원은 1884년 안드레아스 암라인 수사 신부가 설립했다. 안으로는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Rabora)는 베네딕토(480~547) 성인의 수도 규칙(Regula Benedicti)을 순명(順命)하고, 밖으로는 해외 선교에 열정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수도원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기도. 공식적인 기도만도 아침기도, 낮기도, 저녁기도, 끝기도 등 4차례나 된다. 여기에 독서기도(말씀기도), 개인적인 묵상기도까지 합하면 하루 4~5시간을 기도로 보낸다.
기자가 참석한 수도원 내 성심(聖心)성당에서 진행된 저녁기도 미사는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모자가 달린 검은색 수도복을 입은 40여명의 수사가 줄지어 입장해 제단 좌우에 자리를 잡더니, 가톨릭 전례음악인 그레고리안 성가의 음률에 맞춰 '요한의 첫째 서간'(요한 1서) 3장을 봉송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수사들이 성경을 한 구절씩 봉송하면 신자들이 응송하고, 구약성서 시편 낭독과 신자들의 기도, 주의 기도까지 기도는 장장 30분에 걸쳐 진행됐다. 블로머 마우루스(50) 수도사는 "베네딕토회 수도원은 매 시간 드리는 '시간 기도'를 가장 중시한다"며 "일이 아무리 바빠도 절대로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 오틸리엔 수도원은 한국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이 수도원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이어 두 번째로 조선에 해외 선교사를 파견했다. 당시 조선대목구장(조선교구장)이던 뮈텔 주교의 요청으로 1909년 2월 25일 조선에 온 도미니쿠스 엔쇼프와 보니파시오 사우워 신부는 서울 혜화동에 한국 최초의 수도원인 베네딕토 수도원을 세웠다. 하지만 베네딕토 수도원은 일제의 모진 탄압을 견디지 못해 1924년 함남 덕원으로 이전했다. 6ㆍ25전쟁 때 50여명의 수사와 수녀들이 순교한 뒤 1ㆍ4후퇴 때 경북 칠곡군 왜관으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50여명의 순교자들은 현재 복자(福者, 성인의 전 단계)의 반열에 올리기 위한 시복(諡福) 심사 중이다.
마우루스 수도사는 "성 오틸리엔 수도원이 선교사를 파견한 나라는 20여개국에 이르지만 한국처럼 수도원이 폐쇄되는 우여곡절을 겪고 수많은 수도사들이 희생된 곳은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의 이런 인연으로 우리 수도원 성당 제대(祭臺) 아래에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1821~1846) 신부의 유해 일부를 안치했다"고 소개했다. 수도원은 김대건 신부를 아시아의 대표 성인으로 정해 작은 동상을 만들어,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성인인 르완다의 칼 르왕가 성인과 유럽의 오틸리아 성녀, 보니파치오 성인의 동상과 함께 제대 네 귀퉁이에 세워 놓았다. 이 밖에 박물관 내에 한국 코너를 만들어 조선에서 활동하던 수사들이 가져온 각종 유물도 전시하고 있다. 한복과 갓, 고가구, 가야금, 동경(銅鏡) 등 선교활동 당시 조선의 모습이 담긴 물건들이다. 국내 최초의 가톨릭 잡지 '가톨릭 소년' 창간호와 수사들이 조선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쓴 화학교재도 수십 점에 이른다. 박물관 한쪽에는 한국전쟁 때 순교한 선교사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수도원 원장인 예레미아스 슈뢰더 총아빠스는 "우리가 파견한 선교사들이 뿌린 피가 한국 천주교회 성장에 토대가 됐다면 무엇보다 큰 영광"이라며 "이들의 희생은 신앙의 증거인 만큼 한국은 슬픔보다 기쁨의 땅"이라고 말했다.
오틸리엔(독일)=글ㆍ사진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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