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 속에 남루한 이삿짐을 실은 1톤 트럭 한 대가 달려가고 있다. 이 날씨 속에 이사라니! 그것 만으로도 안타까운데 깨어지고 부서진 살림살이라니! 가난한 이사 풍경에 마음이 시린 것은 어린 시절 내 모습이 겹쳐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때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잠시 외할머니와 함께 산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라고 해서 나를 품어 줄 만한 살림살이가 아니어서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다. 이삿짐이라고 해도 리어카 한 대에 다 싣지 못했다. 이부자리와 솥, 냄비, 이빨 빠진 그릇 몇 개, 쓰다 남은 연탄 몇 장…. 나는 앞에서 끌고 연로하신 외할머니는 뒤에서 밀며 우리는 조금이라도 월세가 싼 방을 구하러 다니던 철새였다.
철마다 오가는 철새가 아니라 수시로 옮겨 다니던 철새였다. 오영수 선생의 소설 <후조> 에 철새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 있다. '더우면 오고 추우면 돌아간다. 또 추우면 오고 더우면 가기도 한다. 언제나 패를 짜서 먹이를 찾아갔다가 떼를 지어서 돌아온다. 이것은 후조의 생리다.' 후조>
나는 그 소설을 읽으며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후조도 있다'는 구절에 밑줄을 그어 놓았다. 그것이 내 모습이었다. 내 모습이며 그 시대의 익숙한 풍경이었다. 포장이사에 익숙해진 세태다. 그래도 여전히 낮고, 어둡고, 추운 곳에서는 단봇짐을 싸는 풍경이 있다. 그 풍경에 늘 따뜻한 햇살 있으라.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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