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 학생들이 강의시간에 많이 졸더라도 이해를 부탁합니다". 이 말은 최근 한 과학고에 초청강의를 갔을 때 교장이 필자에게 한 것이다. 학생 대부분이 2년 만에 조기 졸업해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과학고는 아침 6시에 기상하고 밤 1시에 소등한다. 성적과 관련이 적은 초청강의 시간은 학생들이 부족한 잠을 채우기에 좋을 것이다. 교사들도 조기졸업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이 학생들 건강과 정서에도 좋지 않다고 염려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하려는 의지는 없어 보였다. 정상적으로 졸업하는 과학고 학생들이 오히려 비정상으로 간주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기술앰버서더로 초중고 과학강연을 하면서 지금의 학교교육이 걱정스럽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많은 학생들이 강의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생리적인 수면욕을 이기지 못해 졸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졸지 않도록 강의를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공부는 학원이나 개인과외에서 하고 학교는 내신성적을 잘 받기 위해 다닌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니 걱정이다.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충분한 잠은 성장은 물론 건강한 정신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은 가장 기본적인 충분한 잠조차 허락되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얼마전 과학계 대학에서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 바 있다. 학생 가운데는 조기졸업을 한 과학고 출신이 많아 생물학적으로 나이 어린 학생들이 많다. 머리가 아주 좋고 지적인 능력은 뛰어난데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기복이 심한 아이들이 많을 수 있다. 학교마저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고, 학생들은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거나 정서를 함양하기는커녕 시간에 쫓겨 입시만 준비하다가 대학에 들어갔으니,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최근 미국 CNN방송은 한국에서 고교 3학년은 지옥의 해라면서, 힘든 입시제도로 인해 학생들이 받는 심리적인 스트레스로 매년 200여명의 학생이 자살한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3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룰 기록했고, 청소년 사망원인의 1위가 자살이라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자고 싶은 밤잠도 설쳐가며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본인의 진로를 스스로 선택하는가를 묻고 싶다. 수능성적과 부모, 사회여론에 의해 대학과 진로가 결정되고 있지 않은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한 것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창의적 두뇌활동을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적절한 잠을 잘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성장호르몬은 대뇌 밑에 위치한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단백질성 호르몬으로 체내에서 뼈, 연골 등의 성장뿐만 아니라 지방분해, 단백질 합성을 촉진시키는 작용을 한다. 성장호르몬은 모든 기관이 가장 왕성하게 발육하는 청소년기 때 매우 중요하며, 이때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 회로인 시냅스가 손상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성장호르몬은 밤 10시에서 새벽 2시에 가장 많이 분비되며 취침 후 2시간가량 지나 숙면을 취하게 되는 시기에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밤 10시 이전에 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청소년은 미래 한국을 책임질 주인공이기에 국가 장래를 위해서라도 학생들에게 잠 좀 푹 자게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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