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가 벨기에의 무정부 상태에 종지부를 찍을 태세다.
531일 동안 정부 없는 상태가 이어져 세계 최장기 무정부국가 기록을 이어가던 벨기에가 26일(현지시간) 내년도 예산 감축안에 합의, 연립정부 설립 가능성에 한 발짝 다가섰다. 독일 dpa통신은 벨기에 정당들이 엘리오 디 뤼포 왈롱지역 사회당 당수의 주도 하에 내년도 예산삭감안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선거권 분할 문제와 함께 연정 구성의 최대 장애물 중 하나였던 예산안 문제가 해결됐다. 이날 합의된 예산안은 내년도 예산에서 올해 대비 약 10%에 달하는 113억유로(약 17조4000억원)를 삭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벨기에는 지난해 6월 총선 이후로 북부 네덜란드어권(플레미시지역)과 남부 프랑스어권(왈롱지역)의 의견 불일치로 연정을 구성하지 못한 채 1년 넘게 지방자치 운영에 의존해 왔다. 연립정부 없이도 나라가 굴러가는 데는 아무 문제 없다고 큰 소리치던 벨기에 정당들이 부랴부랴 내각 구성에 돌입한 것은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됐기 때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전날 벨기에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추고 '부정적' 등급 전망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S&P는 "새 정부를 구성하려는 정치권의 노력이 계속 실패로 돌아가는 가운데 벨기에의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금융부문과 채무상황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랜 지역 갈등으로 폭넓은 분야에서 지방자치를 실시해온 벨기에는 무정부 상태에서도 올해 경제성장률이 유럽 최상위권을 기록하는 등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유로존 부채 위기가 심화하면서 국가부채 해결 등 중앙정부 차원의 중장기 재정안정책을 마련하는 데 한계를 보여 23일에는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처음으로 5%대를 돌파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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