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에서는 두 대기업의 후진적 경영방식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카메라 등 광학기기 메이커 올림푸스는 버블경제시대인 1980~1990년대 회사 돈을 주식 및 부동산 등에 투자해 1,000억엔(1조5,000억엔)의 손실을 입었다. 2001년부터 회장을 맡아 사실상 오너 역할을 해온 기쿠카와 쓰요시(菊川剛) 전 회장 등은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40여년에 걸쳐 분식회계를 일삼았다. 예를 들면 2008년 자이러스라는 의료기기 회사를 19억2,000만달러에 인수했는데 인수금의 30% 이상이 거래를 중개한 자문업체 두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거래액의 1% 가량이 자문료로 지급되는 것을 감안하면 누가 보아도 이상한 거래였지만, 올해 초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마이클 우드퍼드 사장이 이 문제를 제기했다가 해고당한 뒤에야 비로소 이 사실이 알려졌다.
다이오(大王)제지의 이카와 모토타카(井川意高) 전 회장은 회사 돈을 카지노에 탕진하다가 특수배임혐의로 체포됐다. 창업 3세인 오너경영인 출신 이카와 전 회장은 주식 거래로 입은 손실을 만회하겠다며 회사 돈을 빼내 미국 라스베이거스, 마카오, 싱가포르 등을 돌며 도박을 했다. 이카와 전 회장은 비서를 통해 회사 돈을 자신의 통장에 입금시키는 수법으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9월까지 105억엔(1,600억원)을 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라고 못하는 일본
두 사건은 상명하복과 가부장적 문화에 사로잡혀 오너 경영인에게 비판을 하지 못하는 일본의 기업 풍토를 그대로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나 회계법인 등 기업 감시 책임이 있는 사람들도 회사 상층부의 잘못된 결정을 지적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올림푸스 이사회는 우드퍼드 전 사장의 끊임 없는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회사 운영에 문제가 없다며 기쿠카와 전 회장을 편들었다. 하지만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착수하고 기쿠카와 전 회장이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갈 뜻을 밝힌 후에야 이사회는 분식회계 사실을 시인했다. 다이오제지 직원들은 "오너 일가는 신과 같은 존재라 어길 수가 없었다"고 검찰에서 답했다고 한다.
일본 기업 거듭나는 길 열 듯
이번 사건으로 일본 기업이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을 고칠 기회는 얻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를 선언한 마당에 후진형 기업비리가 터지면서 일본 정부가 기업에 한층 엄격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대기업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사외이사제도를 의무화하고 해당 기업과 거래 관계에 있는 인물의 사외이사 선임을 금지키로 하는 방침을 정했다.
전문가들은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도 체질개선에 인색했던 기업들이 TPP와 이번 비리사건을 계기로 조금씩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주도 하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이뤄낸 한국이 부럽다"는 한 전문가의 말처럼 일본 기업의 체질개선이 TPP 가입여부에 상관없이 시급한 당면과제인 것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의 틈바구니에서 일본 기업들은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됐다.
한창만 도쿄 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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