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연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10대에서 50대 이상까지, 학생 주부 회사원 교사 작가 등 직업도 다양한 시위대가 매일 5,000여명에서 많게는 1만여명씩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체감온도 영하 10도 안팎의 한파에, 경찰의 물대포 진압 위협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민들을 자발적으로 불러 모으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24일 집회 현장에서 밤 늦게까지 자리를 지킨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이날 집회 참석자들은 대부분 한미 FTA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전북 정읍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두승산(39)씨는 "한미 FTA는 생존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두씨는 "지금도 남는 게 없다. 농업이 개방되면 값싼 미국산 농산물 때문에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게 뻔하다. 정부는 영농인 보호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도 않은 채 개방해 그 직격탄을 우리가 그대로 맞게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원 이순옥(36)씨는 "FTA 체결로 공공서비스가 영리화되면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삶의 조건이 충분치 않은 나같은 사람은 뭘 믿고 살아야 하냐"며 "자동차 업체만 주로 이득을 본다는데 그들을 믿고 살아야 하나"라고 토로했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13년을 살았다는 화가 정수은(39)씨는 "FTA가 내 삶을 통째로 바꿔 놓고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나 광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되자 캐나다 의료보험도 100% 본인 부담인 미국식으로 바뀌더라"며 "당시 일자리를 잃은 멕시코 청년들이 미국에 밀입국해 온갖 차별을 받으며 지내던데 FTA가 되면 우리 청년들도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밀입국해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집회 장소에선 10대 학생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서울 마포구의 대안학교에 다니는 장모(17)군은 "미국에 흉작이 들거나 갑자기 농산물 수출단가를 올리면 우리나라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50대 중학교 교사인 이모씨는 "FTA는 '성격이 안 맞아도 이혼할 수 없는 결혼'인데 우리보다 후손들이 더 문제"라며 "지금도 충분히 경쟁적인데 앞으로 아이들이 얼마나 더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야 할지 걱정이 돼 여기에 나왔다"고 했다.
경찰의 강경 진압 등 정부의 잘못된 행태 때문에 집회에 나왔다는 참가자도 있었다. 작가 나재원(29)씨는 "1%를 위해 99%는 희생하라는 한미 FTA도 문제지만, 70대 노인에게 물대포를 쏘아대는 것을 보고 분노해 참석했다"고 말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의 기억도 이들을 서울광장으로 이끌었다. 고등학생과 초등학생 남매를 둔 주부 김미현(45)씨는 "촛불집회 때도 국민 건강에 위험이 될 쇠고기 수입 협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해 촛불 들고 반대했다"며 "한미 FTA로 평소 잔병치레가 많은 아이들의 약값이 오를까 걱정이 돼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공연기획 일을 하는 김종수(25)씨는 2008년 촛불집회 때 의경으로 시위 진압에 동원됐던 경험을 떠올렸다. 그는 "그때 숙소로 돌아가서는 동료 의경들과 시위대의 주장에도 맞는 말이 있다고 얘기를 나눴다"며 "FTA에도 반대하지만 이 정권의 행태가 싫어 집회에 나왔다"고 밝혔다.
시위에 따른 불편을 호소하는 지적도 있었다. 이상규(54ㆍ택시기사)씨는 "시위대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체 국민의 것처럼 생각하니까 도로를 점거하고 막무가내로 시끄럽게 한다.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반대하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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