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라는 신용등급이 잇달아 추락하고 큰 나라는 국채 발행(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 각국 정상이 수시로 모여 해법을 논의하지만 시장을 진정시키기엔 늘 역부족이다. 세계 경제의 골칫거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유로존의 현실이다. 위기가 장기화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으면서 유로존 위기가 세계 경제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굳어지고 있다.
우선 남유럽을 휩쓸던 불길이 동유럽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24일(현지시간)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헝가리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Baa3에서 Ba1으로 한 단계 강등한다고 밝혔다.
비록 한 단계 차이지만 투자적격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떨어지는 것이라 국채의 대우 자체가 달라진다. 등급 전망이 부정적이라, 등급의 추가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디스는 “헝가리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달성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고 중기적으로 국가부채를 줄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 강등 이유를 제시했다. 헝가리의 국가 신용등급이 깎인 이유 역시 남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재정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이면서 유로화를 쓰지 않는 10개국 중 하나인 헝가리는 2008년 EU에서 처음으로 구제금융(200억달러)을 받았다. 이후 경제가 회복되는 듯 했으나 유로존 경기 둔화로 수출이 부진해지면서 또다시 경제사정이 악화했다. 헝가리 포린트화의 가치는 구제금융 당시 수준으로 하락했는데 포린트화 평가절하 때문에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80% 수준을 다시 초과했다. 지난 수년간 연금 축소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거둔 성과가 환율 때문에 일거에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PIGS의 일원으로 심각한 재정적자를 겪고 있는 포르투갈의 상황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 신용평가사 피치가 포르투갈의 국가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강등한 24일, 수도 리스본 등에서 정부의 긴축정책을 반대하는 대규모 총파업이 일어나 대중교통이 마비되는 등 큰 혼란이 빚어졌다. 긴축반대 시위→국제시장 신뢰 하락→국채수익률 급등→적자 확대→추가 긴축정책 실시 식으로 악순환을 거듭한 그리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덩치 큰 나라들의 사정도 악화일로다.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은 지속가능한 마지노선인 7%를 다시 뛰어 넘었고 독일 국채는 입찰에서 미달 사태를 빚었으며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그 동안 나왔던 구제금융 방안이 모두 미봉책으로 확인되자 유럽중앙은행(ECB)이 직접 채권을 사들여 ‘부채와의 전쟁’에 본격 참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ECB 최대주주 독일의 강한 반대로 실현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24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 3국 정상회동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ECB 역할 문제는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메르켈 총리는 유로존 국가들이 공동으로 국채를 발행하자는 EU 집행위원회의 ‘유로본드’ 주장에도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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