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좀 쉬어야겠구나. 묶인 몸이 중얼거린다. 달력 날짜 곁에 메모해 놓은 일정을 헤아려보니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다. 내가 지나온 10월과 11월은 마치 포탄이 터져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폐허 같다. 그 전장 같은 길 위에서 풀어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시간이 나를 친친 묶고 있다.
묶인 나를 풀기 위해 실마리를 찾아봐도 어디가 시작인지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다. 그건 '이제 좀 쉬지'라고 몸이 나에게 하는 충고다. 어릴 때 함께 자란 막내 고모는 자수를 놓고 나면 사용한 예쁜 색실을 처음처럼 가지런하게 정리해 놓았다. 그 일이 어린 나에게는 참으로 어려웠다. 고모 몰래 그 색실을 꺼내 가지고 놀다 다시 감아놓는다는 것이 결국 전부를 얽히게 만들어 버리는 일이 많았다.
얼마나 끙끙거렸는지 모른다. 내 화를 내가 참지 못해 엉엉 울다 지쳐 잠이 들어버리면 고모는 색실들의 묶인 부분을 전부 풀어 예쁘게 다시 감아 잠든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일은 푸는 것인데 자꾸 매듭으로 묶이고 만다. 하나가 묶이면 전부가 다 묶인다.
자신을 꽁꽁 묶는 쇠사슬까지 단숨에 풀고 탈출하는 마술사가 되고 싶다. 허나 매듭은 묶은 사람이 푸는 것이다. 내가 나를 묶었다면 내가 풀어야 한다. 시간이 나를 묶었다면 그 시간들을 풀어야 한다. 풀어서 편안하게 쉬고 싶다. 다시 단정하게 감긴 당신의 색실이고 싶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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