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은 태생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이류 인생이었다. 올림픽 무대에서도, 전래동화 ‘정직한 나무꾼’에도 늘 두 번째로 등장한다. 빛깔과 자태부터 차이가 나는 터라 오랜 세월 주인공을 받쳐주는 조연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최근 녀석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화폐가치의 하락을 예견했던 쑹홍빙(宋鴻兵) 중국 환추(環球)재경연구원장은 최근 저서 에서 녀석을 일컬어 “일생에 가장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는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투자열풍이 일기도 했다.
최근 조연에서 갑자기 주인공으로 격상된 녀석은 바로 은(銀)이다. 물론 쑹 교수의 주장엔 단서가 달렸다. “금의 가치가 계속 상승한다면 은은 더욱 빠른 속도로 가격이 올라갈 것이다.”
국내에서도 귀금속상가나 재래시장에서 ‘은수저 매입’이라는 입간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은수저뿐 아니라 집안 구석구석 숨겨진 은제품을 찾아나선 은 전문매입업체들도 늘고 있다.
사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뚫는 금값에 가려지긴 했지만 상승률만 따지면 은의 매력이 더 눈부시다. 지난해 금은 27% 올랐지만 은은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올 4월 29일엔 온스(31.1g)당 50달러에 육박(48.58달러)했다가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의 가격 억제책에 따라 날개가 잠시 꺾였을 정도다.
현재 은은 매장량과 보유량을 합쳐 43만톤 정도, 금(20만7,000톤)보다 두 배 가량 많다. 희소성만 감안한다면 은이 금값의 절반 정도까지는 갈 여지가 남아있는 셈이다.
물론 투자 대상으로서 은은 여전히 금보단 여러 면에서 뒤진다. 현재 국제 금값은 온스당 약 1,696달러, 은은 32달러 정도다. 단순계산으로 금이 은보다 53배나 비싸다. 더구나 은은 금값을 뒤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하는데다, 가격변동도 심하다.
그래서 은 투자를 위해선 은의 성격을 정확히 꿰고 있어야 한다. 절대가치를 인정받아 안전자산으로 첫손 꼽히는 금과 달리 은은 빛을 잘 반사하고 연마도 쉬운데다 항균성이 뛰어나 산업재료로 많이 이용된다. 앞으로 쓰임새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즉 경기가 좋아져 산업수요가 늘면 늘수록 가격이 올라가게 된다. 반면 경기가 나빠지면 가치를 보전할 수 있는 금과 달리 가격이 더 빨리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은은 금보다 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임병효 삼성증권 투자컨설팅팀 연구원은 “은은 금에 비해 변동성이 높아 위험대비 수익률 측면에서도 금보다 뒤진다”고 말했다.
투자방법도 마땅치 않다. 삼성자산운용 등 일부에서 은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했지만 금 관련보다 수가 적다. ‘실버 바’와 ‘그래뉼’(구슬 같은 은 알갱이)을 직접 사는 게 현재로선 가장 쉬운 은 투자방법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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