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의 생명력은 질겼다. 올해 2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반정부 시위 발발 한 달여 만에 철권 통지를 끝장낸 이후 한 동안 지지부진했으나 가을 들어 리비아와 예멘에서 다시 한번 큰 불꽃을 피웠다. 또 이집트에서는 제2의 민중봉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암울한 가을’로 전락할 뻔 했던 아랍의 봄이 이집트와 예멘으로 인해 되살아났다”고 평가했다.
아랍의 봄 아라비아반도 상륙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의 퇴진은 민주화 시위의 중심축을 아라비아반도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권교체에 성공한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는 모두 북아프리카 국가들이다. 반정부 시위 초기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시위 확산 속도는 빨랐지만 동력이 약했던 중동 국가들이 예멘의 정권 교체를 기폭제로 민주화 불씨를 다시 키울 것으로 보인다.
예멘의 바통을 이어받을 주자로는 시리아가 1순위에 꼽힌다. 종교적ㆍ인종적 동질성을 공유한 아랍연맹(AL)마저 등을 돌린 상황에서도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시위대와 충돌은 계속될 것”이라며 강경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아사드에게는 40년간 군림한 바트당과 32만명이 넘는 정규군이 버팀목이다. 하지만 최근 반정부 무장세력인 자유시리아군이 공세를 강화하고 있어 시리아도 리비아의 전철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정작 중동지역 민주화 확산의 키는 바레인이 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바레인이 수니파 국가들의 협의체인 걸프협력회의(GCC) 소속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수니파가 주축인 바레인 정부는 2월 반정부 시위 당시 과잉진압 사실을 인정하며 최근 독립조사위원회를 꾸리는 등 민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으나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시아파의 반발이 여전히 거세다. GCC의 맏형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바레인 반정부 시위에 5,000명의 진압 병력을 파견한 것도 수니파 국가들에 미칠 파급 효과를 두려워한 측면이 크다.
혁명 완수의 뇌관은 경제
독재 정권을 끌어내린 나라들도 혁명 완수를 선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로이터통신은 24일 “아랍의 봄의 성패는 결국 새 정부가 국민의 경제적 욕구를 얼마나 잘 충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도했다. 이집트가 대표적 예다. 이집트 시위는 표면적으로 권력 이양에 미온적인 군부의 행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퇴진 이후에도 계속된 경제난이 주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관광수입에 의존하는 이집트는 외환보유고가 올해 초 360억달러에서 10월 220억달러로 줄었고 식품가격은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22일 새 내각 명단을 발표한 리비아 과도정부는 각료 인선에서부터 난맥상을 드러냈다. 리비아 경제의 최대 수입원인 석유ㆍ가스장관에 이탈리아 에너지기업 임원 출신을 임명해 경제 회생이라는 당면 과제보다 보은인사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알자지라방송은 “아랍권 국가들은 국가가 경제의 제1공급자이자 소비자인 독점자본주의에 익숙하다”며 “민주정부가 들어서도 경제구조를 바꾸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라고 말했다.
최근 총선을 통해 제헌의회와 연립정부를 구성, 모범적인 민주화 사례로 평가 받는 튀니지에도 경제는 잠재적 위협요소다. 23일 튀니지 중서부 카세린에서 발생한 폭력시위는 제1당인 엔나흐다당이 일자리 제공을 약속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