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평소와 달라졌다면, 사소한 걸 자꾸 잊어버리거나 유달리 불안해하거나 짜증이 늘었거나 밤에 땀을 자주 흘린다면 아마도 엄마의 난소가 기능을 멈춘 걸지도, 더 이상 생리대가 필요 없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 때부터 엄마의 인생은 새 길로 접어든다.
많은 엄마들이 그 새 삶을 힘겨워한다. 폐경 이후에도 건강하게, 여자답게, 젊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호르몬요법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부작용을 걱정해 호르몬요법을 꺼린다. 개인별 맞춤으로 처방 받으면 호르몬요법은 실보다 득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유방암 위험 1만 명 중 8명 꼴
폐경이 되면 난소에서 나오는 여성호르몬의 양이 폐경 전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호르몬요법은 약으로 여성이 처음 생리를 시작할 때와 비슷한 정도의 여성호르몬 양을 유지해주는 방법이다. 호르몬 약을 먹을지 말지 고민하는 폐경 여성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유방암이다. 호르몬 약이 처음 나온 1940년대 초 이후 최근까지도 호르몬 약을 많이 복용하면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미국 국립보건원이 주도한 여성 대상 대규모 임상시험(WHI) 결과 호르몬 중 에스트로겐만 먹은(단독요법) 여성은 7년까지 유방암 위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함께 먹으면(복합요법) 약 6년 뒤 위험이 증가했다. 이를 근거로 현재 학계에서는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을 쓰고 나서 15년 정도까지는 특별히 유방암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
박형무 대한폐경학회장(중앙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호르몬 약을 먹었을 때 유방암 위험이 있다 해도 사실 1만 명 당 8명 꼴로 낮은 편"이라며 "이는 비만 때문에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와 유방암 발병 위험이 증가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라고 말했다. 더구나 유방암 발병 추세가 서구와 한국은 좀 다르다. 국내 유방암 환자는 폐경 전인 40대 후반이 가장 많고 그 후엔 감소하지만, 미국은 폐경 후 환자가 더 많다는 게 박 회장의 설명이다.
개인마다 건강상태가 다르니 프로게스테론도 함께 복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땐 "사람 몸에 있는 프로게스테론과 구조가 같은 천연 프로게스테론 제제를 쓰면 유방암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고 박 회장은 조언했다.
폐경 후 10년 내 최대 효과
호르몬요법을 망설이는 여성들이 유방암 다음으로 많이 걱정하는 게 심장병이다. 한때 WHI에서 호르몬요법을 많이 쓴 여성은 심장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으나, 최근 그게 통계적으로 의미 없는 수치라는 지적이 나왔다. 단 나이에 따른 위험도 차이는 분명히 있다. 70세가 넘은 여성에게 호르몬요법을 썼을 때는 심장병 발병 위험이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밖에 자궁내막암이나 난소암 대장암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다. 이에 대해 대한폐경학회는 최근 "대장암은 최근의 역학연구에 따르면 호르몬요법으로 오히려 발병 위험이 줄고, 난소암은 발병 위험이 증가한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공식 견해를 내놓았다. 자궁내막암 위험성은 유방암과 반대다. 에스트로겐만 먹을 때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호르몬이 자궁내막을 계속 자극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을 함께 복용해야 예방할 수 있다.
얼굴이 달아오르거나 밤에 땀이 많이 나거나 피부 노화가 빨라지거나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우울증이 오는 등 폐경기의 일반적인 증상은 대부분 호르몬 약을 먹으면 좋아지고, 골다공증이나 골절 가능성도 줄어든다는 데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다만 호르몬 약을 언제 어떻게 복용하느냐, 건강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의사와 상의해 개인별 맞춤요법을 쓸 필요가 있다.
호르몬요법은 60세 이하의 여성의 경우 폐경 후 10년 이내에 효과가 가장 크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60세 넘어서 뒤늦게는 호르몬 약 복용을 새로 시작하지 말아야 하고, 15년 정도 약을 먹어온 사람은 의사와 상의해 득실을 따져 계속 복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특히 45세 이전에 난소 기능이 멈춰 남들보다 빨리 폐경을 맞은 여성은 보통 사람들이 폐경이 되는 50세까지는 꼭 호르몬 약 먹기를 대한폐경학회는 권장한다.
최근 일부 업체가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폐경 증상 완화에 효과가 좋다며 판매하는 데는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박 회장은 "사람 몸에 있는 에스트로겐은 화학적으로 스테로이드 구조"라며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대부분 비 스테로이드 구조이기 때문에 효과가 미미하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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